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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독

등록일 2014-10-24 02:01 게재일 2014-10-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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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만 수
아직도 어머니를 파먹고 있다

고향집 뒤란 그녀의 간장 독 속에는

알금알금한 망사주머니인지 삼베주머니인지

어머니의 기술이 숨겨져 있는 것인데

그것이 맑은 장을 뜨기 위한 필터인지

간을 조절하는 장치인지 모를 일이나

그녀에게는 중요한 덫이고 간을 재는

계기판 같은 것이리라

허연 매를 걷어내면 꼴삭하게

묵은 간장이 깊은데

거기 어머니의 길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려

짭쪼롬하게 웅크린 그녀의 통로가 있다

싱거운 세상의 길

그녀를 파먹으며 이만큼 왔다

고향집 뒤란에 아직도 어머니가 거느리는 독이 몇 있다. 간장과 된장, 맛깔스런 빠알간 고추장이 꼴삭하게 담겨져 있는 장독대에서 화자가 느끼는 어머니의 한 생과 사랑과 정성을 그려내는 시다. 오랫동안 장을 담아놓고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간장독에는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이 녹아있다. 자식과 가족을 향한 일방적이고 헌신적인 사랑과 정성이 그윽한 맛으로 스며있다. 이 땅 어느 산자락 어느 모룽지마다 어머니와 함께 낡아가는 고향집 뒤란에는 이러한 간장독이 없을 것이며 그 독마다 꼴삭하게 녹아있는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의 향기가 없겠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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