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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등록일 2014-10-22 02:01 게재일 2014-10-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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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 과거를 회상해 본다. 학생시절 어느 날 거울을 보는 순간, 거울 속의 나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진하게 풍겨 나왔다. 풋내기 대학생인 내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범위는 거울을 보던 그때까지의 것만 이해됐다.

그때는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는 아버지와 크게 다투기도 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유일하게 나의 집만이 판자 집이었다. 부끄러워서 친구를 집으로 오도록 할 수 없었다.

살을 저미는 가난한 환경에서 나는 `아버지가 사시는 모양으로는 살아가지 않겠다. 아버지 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살겠다`고 가끔 다짐도 하면서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늘 가족들을 위해 힘들어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였음을(아버지 죄송해요….) 이제는 확실하게 절감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거쳐서 할아버지가 된 지금의 느낌으로는, 과거보다 세월의 변화 때문인지 아버지의 역할은 점점 축소돼고 그 존재는 초라하게 보이는 것 같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버지가 있음에도 점점 더 영향력이 없는 가정, 아버지 없는 시대(時代)가 돼가고 있다. 어느 문학가는 “아버지 없는 사회는 남성의 소외나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모두의 위기를 의미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지위가 흔들리는 사회(fatherless society)는 신(神)이 없는 사회(godless society)로 되어간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 말은 아버지의 권위가 회복되어야만 국가와 가정, 학교의 권위도 회복 된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진다면 그 사회는 혼돈과 무질서가 넘치게 되고, 아버지의 그림자가 희미해진 가정은 비가 새는 집인거나 마찬가지이다. 제일 기본 뿌리에 존재하는 아버지는 집의 기초가 되는 주춧돌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설문에 학생들은 등대, 친한 친구, 꼭 필요한 산소, 가로등, 피뢰침, 나침반, 멘토, 자신의 살점을 다 떼어 나에게 주는 `가시고기`, 안경,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물음표`라는 등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다.

여론 조사에서 딸이 느끼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1. 자상, 2. 친근, 3. 무뚝뚝 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1. 엄격 2. 무뚝뚝 3. 자상하다로 답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인생의 경험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구하는 젊은이는 1/3로서 많지 않다고 했다.

요즈음의 젊은이는 자식을 마음으로만 사랑하고 일하기에만 애쓰고 수고하는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다. 컴퓨터, 스마트폰, 돈과 같은 물질로서 만족을 주는 아버지도 좋지만 친밀감으로 교제할 수 있는 아버지를 더 원한다. 전보다 대화하는 아버지를 더 바란다.

자식은 아버지를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의 시인은 “한 명의 아버지가 100명의 스승보다 귀중하다”고 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세상의 그 어떤 스승이나 유명한 사람보다도 가족에게 큰 영향을 주기에 행복한 가정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세상은 살아가기가 어렵다. 자식을 키우기는 더욱 어렵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슬픔과 고통, 치열성, 괴로움, 사기 치기, 유혹 등 모든 것을 겪어내면서 점차 온전한 아버지로 성숙되어 간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는 회복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과거에 가족들을 지배·군림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 점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 그래서 관심과 고민스런 것들에 대해 대화 등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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