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고 앞에서 시외버스터미널에 이르는 둔치에는 강 쪽으로부터 보행로, 인라인스케이트로, 자전거로 등으로 나눠 3개 라인을 두고 있다. 그런데 용도별로 이용하는 시민들은 극소수이다. 보행로로 자전거를 타는 가 하면 심지어는 자전거로로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경우도 있다. 또 강을 접한 보행로는 낚시꾼들의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잠식 당해 보행에 지장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낚시꾼들이 휘두르는 낚시대로 인한 상해 우려도 낳고 있다. 이곳은 낚시 금지구역이다. 단속 등 인위적인 근절책보다는 이용객 스스로가 남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삼가는 성숙된 시민정신이 요구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상당수 사람들이 보행로의 통행 방법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거의 매일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양쪽에서 목표점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폭 2m가량의 보행로 안에서 부딪히는 가 하면 서로 피하기 위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시민들이 물 흐르듯 스스로 알아서 보행로를 반으로 나눠 한쪽은 내려가는 사람들, 한쪽은 올라가는 사람들이 이용하면 얼마나 보기에 좋을까 마는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바른 통행법. 학교에 가서 배울 수도 없는 처지이니 스스로 터득,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바른 통행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상식적인 것이 해답이다. 우측 통행이다. 우리나라는 1962년 도로교통법 제정 이래 50여년 동안 해오던 좌측 보행을 2010년 7월부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마련한 `교통 운영체계 선진화 방안`에 따라 우측 보행으로 개정했다. 우리나라가 우측 통행으로 전환한 것은 국민 편리성 외에도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걷어내기 위한 의도였다. 종묘제례나 과거 행렬도 등의 역사적 자료에서는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우측 통행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도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한국철도. 처음엔 단선이었던 한국철도가 선로용량 한계로 1945년 3월 경부선을 시작으로 복선화하면서 당초 사업자인 일본이 자국과 같이 좌측 통행에 맞춰 시설한 것을 바꿀 수가 없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편화한 우측 통행은 우주의 원리에도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지구는 하루에 한 번씩 지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이에 따라 밤과 낮이 생기고 천구의 일주 운동이 생긴다. 왼쪽에서 오른쪽,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는 것이다. 북극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 같은 원리에 따라 생활하고 있는 터라 시행된 지 4년 남짓이지만 우측 통행이 낯설지는 않다. 초등학교 운동회나 중·고교 체육시간·체력검정은 물론 시·구·군민운동장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시계 방향)으로 도는 사람은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지구가 자전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 우주의 원리를 지키면서 살고 있다는 증거로, 여유로운 느낌을 안겨 주고 있다. 이밖에 와인을 마실 때 순하게 한다는 이유로 잔을 돌릴 때도 왼쪽에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도 그렇고 볼트와 너트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는 전국 방방곡곡의 고스톱판도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운동장을 반대로 돌면 몸의 피로가 되레 쌓이고, 와인잔을 볼트처럼 오른쪽에서 왼쪽로 돌리면 더 독해지고, 고스톱판도 반대로 돌리면 설사나 피박을 쓰는 등 안 풀리게 되는 것처럼.
보행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자전거 등이 우측 통행을 하는 이유도 편의성과 안전성 때문이다. 특히 요즘 이용객이 많아진 자전거의 경우 우측 통행은 신체 특성과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통행 방법으로 20% 이상의 사고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임을 고려하면 우측 통행이 안전사고 발생률을 줄인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긍정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는 우측 통행이 제도화한 지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정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홍보 부족 탓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