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박근혜 대통령이 하루 전인 1일 각계 각층 노인 2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어르신들의 노후를 보살피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면서 “새롭게 시행된 기초연금 제도와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확대, 중증치매 지원 등 어르신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복지정책 발굴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올해 새로 100세 된 어르신 1천359명에게 `청려장(靑藜杖)`을 선물했다. 청려장은 한해살이 풀인 명아주 줄기를 말려서 만든 지팡이로서 울퉁불퉁한 옹이에 지압 효과도 있어 짚고 다니면 오래 산다고 한다. 중국 의학서 `본초강목`에서도 중풍과 신경통에 좋다고 해 2000년 안동을 방문했던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도 선물로 전달될 정도다. 청려장은 통일신라부터 조선까지 일흔 살이 되면 나라가 만들어줘 국장(國杖)이라 했고, 여든에는 임금이 선물해 조장(朝杖)이라고도 했다. 그런 전통이 끊겼다가 93년 5월 김영삼 대통령이 100세 어르신들께 선물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청려장을 선물하는 전통이 무슨 잘못이랴만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는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게 문제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60세 이상 노인의 47%가 총수입이 국가 중간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유로운 실버 생활은 딴 나라 얘기인 셈이다. 통계에서도 이런 정황은 명백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60~64세 고용률이 57%를 넘어 사상 처음으로 20대 고용률(56.8%)을 앞질렀다. 고된 생활에 버티다 못해 목숨을 끊는 노인도 적지 않다. 65세 이상 자살률이 10만명당 64.2명으로 전체 평균(28.5명)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고, 75~79세 77.7명, 80세 이상 94.7명 등 나이가 많을수록 자살률이 더 높다.
국제기구가 측정한 노인복지 지표에서도 베트남이나 중국에 비해서도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국제노인인권단체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2014년 세계 노인복지 지표에서도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0.4점을 받아 전체 순위 50위에 그쳤다. 지난해 처음 발표한 순위에서 91개국 가운데 67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소폭 상승했지만 일본(9위), 태국(36위), 스리랑카(43위),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중국(48위), 카자흐스탄(49위) 등도 우리나라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이 나라 노인복지의 부끄러운 실상이다. 1위는 노르웨이(93.4점)가 차지했으며, 스웨덴, 스위스, 캐나다, 독일 등 유럽 주요 선진국들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는 세계 96개국의 노인복지 수준을 소득, 건강, 역량, 우호적 환경 등 4개 영역 13개 지표로 측정했는 데, 특히 4개 영역 중 우리나라의 경우 노인 소득 부분이 80위로 가장 취약했다. 건강상태 영역의 경우 노인의 정신적 복지와 관련한 자료를 새롭게 반영하면서 지난해 8위에서 올해 42위로 대폭 하락했다. 사회적인 연결, 신체적 안정, 시민의 자유 등을 측정한 우호적 환경 분야에서도 54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은 최종보고서에서 “한국은 상당한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으나 기대에 비해 낮은 소득보장 순위에 머물렀다. 노인 빈곤의 심각성과 해결방법, 연금 수준의 적합성과 보편성, 보장범위 등에 대해 국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는 데, 참으로 시급한 현안이다.
어느 TV광고에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다.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얘기여서 큰 호응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한 노인들에게 아름다운 노후를 즐길 권리를 보장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청려장 선물에 그쳐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