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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

등록일 2014-09-24 02:01 게재일 2014-09-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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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일반적인 용어로 `본다`라는 것은 눈의 작용(視)을 말한다. `본다`라는 말은 여러 단어의 어미에서 사용될 수 있다. 과거를 뒤돌아본다, 욕본다, 맛을 본다, 손본다 등, 직접 보는 것(見) 이외에도, 마음으로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 육신의 눈 이외에도 삶에서 살펴봐야 할 것을 잘 볼 수 있다면 그는 건강한 마음의 눈을 갖고(觀) 있는 것이다. 눈은 몸의 기준을 바로 세워서 보이는 것을 알게 하고 또는 그것에서 의미를 찾아내게 하는 마음의 등불이다.

그러나 사실에 대해 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자기주장만 늘어놓는다면 그는 답답하거나 또는 불쌍한 사람이다. 부인과 아들, 그리고 남들은 아는데도 자기 자신만 모르는 경우이다. 또 오직 눈에 보이는 것이 돈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의 부족한 내면을 볼(觀) 수 있다면 그는 그 생각을 만들었던 과거의 곳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서, 새로이 머무를 만한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안착시킬 수 있다. 과거에 가졌던 고정관(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장기간 직장 생활을 하면 그는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직장은 그 나름의 독특한 직장냄새를 나타내 보인(觀)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은 직업의 냄새를 느껴 볼 수 있다. 이런 냄새는 오랜 시간이 걸려서 형성됐으므로 없애기가 매우 어렵다.

이미 형성된 관념을 바꾸려면 엄청난 충격이 필요하다. 망할 지경이 돼야, 있는 것 다 날려야, 철저히 버림받아야, 죽을 고비를 넘겨야 틀이 깨진다. 그래야 다른 각도로 사물을 볼 수 있다.

성경에서 야곱은 오랫동안 타향살이를 경험했고 어릴 때 요셉은 방향을 알 수 없는 다른 나라로 팔려갔다. 모세는 왕자이면서도, 수십 년을 광야를 헤맨 후에야 자신의 위치(看, 看破)를 알았던 것이다. 눈이 떠진 것이다. 눈을 뜨게 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

`고은 맥도날드`라는 신학자는 인생에서 눈을 뜨게 하는 방법을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방법은 고난의 체험을 통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아는 것이다. 둘째는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다. 심하게 병을 앓아 버리거나 죽을 고비에서 회복하는 경우, 또는 성공한 자가 망해버리거나 망한 사람이 기적적으로 성공을 거둘 때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했다.

셋째로는 늙어 가는 과정이 인성을 바꿔 준다고 한다. 노인들은 수많은 경험에서 얻어낸 방법으로 생(生)속을 억누를 수 있어서, 보는 시야를 바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단다. 단, 긴 시간을 요한다.

경험을 누적시키면서 살아온 사람은 이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눈을 떠서 삶의 목적과 이유, 그리고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어 소명에 눈을 뜨게 된다(看)고 했다. 이것은 자기수련의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긍정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는 것에는 수준이 있다.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사실들을 보고(視) 그 이름과 의미를 알아낸 후(見), 생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관념(觀)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수준을 높이는 자가 많다. 그러면 생각의 폭을 넓혀서 전부를 볼 수 있게 된다(看).

視(눈으로 본다·see)에서 -> 見(자세히 본다·look)을 통해 -> 觀(주목하여, 꽤뚫어 본다·idea)이 만들어지면-> 看(看破·밝히 본다. 모두를 알아낸다·seeing through)을 완성한다. `본다`는 `안다`를 넘은 후에 `관념`으로 커져 세세히 알아(터득攄得)나간다.

세상을 그냥 보지 말고 보는 눈의 차원을 높여라. 그리고 항상 변화를 받아들이라. 옛날에 생각이 좁았다면, 그날로 돌아가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시각은 방향 선택이 중요하다. 잘못 가면 헤매지만 눈이 좋으면(觀) 사방을 환하게 볼 수 있다(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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