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에 공전을 거듭하며 마비상태에 이른 국회가 제 식구 감싸기만 하는 것을 보며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단 한 건의 경제·민생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국회다. 이런 와중에도 야당은 국회를 떠나 장외집회를 계속하며 강경 일변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시가 급한 법안들을 외면하고 국회 밖으로 뛰쳐나가 국정을 마비시키는 행태를 국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회가 일도 하지 않으며 세월호를 악용하는 세력의 총공세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물론 중요하지만 국회가 하루 빨리 정상화되어 민생·생활정치에 매진해 달라는 국민들의 염원을 이제는 잘 들어야 한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달 7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한 바 있다. 합의한 특별법 골격에는 그동안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던 주요 민생 법안들을 함께 처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여야 지도부는 이미 세월호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직접 부여하는 일은 법체계를 뒤흔드는 것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포함된 합의이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양보`가 법체계를 유지하며 수용한 특별법이 그 골격이다. 그러나 새정연은 여야가 두 차례나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을 백지화하며 유족대표가 마주 앉아야 한다는 `3자 협의체` 재협상 안을 내 놓았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을 무시하고 줄곧 유족과 당내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끌려 다니는 태도는 거대 야당이 보여줄 모습이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 2차 협상을 인준해야 하는 야당의 의원총회 자리에서 새정연은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하며 또다시 장외투쟁으로 선회하였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을 두 번씩이나 뒤집은 야당이 장외투쟁 운운하는 일은 그 명분이 약하기도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바도 아니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이 야당의 본질기능이라면 야당은 그렇게 싸우도록 제도적으로 마련된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한다. 그 본래의 무대를 뒤로 하고 거리로 나가는 행태에 이제 국민들은 지쳐있다. 야당의 7·30 재·보선 참패와 현재 여론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까닭이기도 하겠다.
세월호 특별법이 제1야당이 국회를 보이콧할 정도의 대단한 법안인가. 세월호 참사가 심각한 사건임은 사실이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때문에 정치권이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법치의 상식과 합리에 따라 제정되어야 한다. 관련 법안과 정책은 유가족의 `동의`를 모두 받아야 한다며 국회의 고유 입법권을 저해하는 법안이 되거나 유가족들에게 무한 특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사고발생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서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안전한 대한민국`과 `국가혁신의 계기`가 되는 합리적이고도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제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시급한 경제·민생 법안들은 마땅히 논의되고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 민심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60~70%의 국민이 이에 동의하고 있으며 반대는 20% 내외로 보인다.
여야가 빠른 시간 내에 절충점을 찾지 못할 경우 지난해처럼 국회 파행이 장기화돼 국정이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15일 국회 본회의가 예정돼 있다. 여기서 경제·민생 법안이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경제회생을 앞당겨야 한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양당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당장 협상에 나서야 한다. 강경대치만이 능사가 아니며, 정치는 대화와 타협의 장이 아닌가. 국민이 만들어 준 과반 의석을 가지고도 국회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혀 사태 수습을 위한 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여권의 무능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야당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타협이 어렵다면 여당이라도 중심을 잡고 입법부가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도록 주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세월호 유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사태이후 침체의 바닥을 헤매는 경제 탓에 가슴앓이를 하는 국민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