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의 나비 날개짓이 한반도에 기상이변을 가져 올 수 있다는 이론을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고 부르는 것 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이 땅에 불어닥친 `프란치스코 효과`가 화제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실제 영적인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성당을 찾는 이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이 역시 크게 늘고 있단다. 성직자들이 회개의 삶, 가난의 삶과 그리스도적 삶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스스로 믿는 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효과란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평범한 사제로 지낼 때의 이름이다. 그는 베르고글리오 신부로 살면서 전철을 타고 다니며 가난한 이들을 찾아 함께 먹고 마시기를 즐겨했고, 비좁은 원룸에서 직접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다. 1976년 3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재판 없이 사형에 처해지고, 수만 명의 시민이 실종되거나 국가보안군에 의해 비밀리에 살해됐던 소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이라 불리던 비델라 군사정권 시절,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군부에 쫓기다 목숨을 잃을 뻔한 많은 사람들을 숨겨주고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그랬던 사제 베르고글리오가 콘클라베를 거쳐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즉위명은 “허물어지는 교회를 지키라”는 말씀에 따라 교회 혁신의 초석을 마련했던 성인 프란치스코의 삶을 본받는다는 의미에서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 이후 말과 행동을 통해`벽이 없는 소통`과 `낮은 곳을 향하는 행보`를 지향해왔다. 고대의 황금 송아지 숭배 같은 물신숭배와 비인격적인 자본독재를 강하게 질타해왔으며,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이 인간을 쓰고 버리는 노예로 만들었다면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자유 시장 체제를 옹호하는 경제인이나 이론가들이 강변해 온 낙수효과에 대한 비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태껏 자본주의자들은 대기업과 부유층의 파이를 먼저 늘리면 그 혜택이 자동적으로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교황은 그들의 이론에 따라 윗접시에 물이 차면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윗접시가 더 커져버린다고 공박했다.
교황 스스로도 검약한 생활로 솔선수범했다. 그는 지난해 3월 교황으로 선출된 뒤 교황관저 대신 낡고 허름한 여행자 숙소인 `산타마르타의 집`에 머물고 있을 뿐 아니라 50달러 짜리 스와치 시계를 차고, 낡은 가슴 십자가를 착용하고 다닌다. 한국에서의 행보도 마찬가지였다.“낮은 곳으로 가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세월호 가족과 꽃동네 장애인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명동성당 맨 앞줄에 앉아 있던 7명의 위안부 할머니를 만난 뒤에는 “(일본의)침략으로 끌려가 이용당하고 노예같은 생활을 했지만 결코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라며 “이처럼 큰 고통속에서도 어떻게 품위를 잃지 않았는 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말로도 글로도 통하지 않는 까닭에 산 몸뚱이에 불을 붙이고, 살아야 할 몸뚱이에 곡기를 끊어도 민의가 전달되지 않는 게 불통의 땅으로 불리는, 이 땅의 현실이다.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낮은 자세와 겸허한 태도로, 인자한 말과 소박한 행동으로, 때로 과감하고 단호한 변혁의 몸짓으로 성직자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감당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은 이 땅이 바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쉽 모델을 보여주는 듯 하다. 2천년 가톨릭 커뮤니케이션 전통과 프란치스코의 사회적 의식,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3박자가 `프란치스코 효과`를 만들었다는 모 언론의 분석은, 그래서 더 아픈 현실을 자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