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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

등록일 2014-08-07 02:01 게재일 2014-08-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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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신문에 일반기사로 보는 사망소식은 한 번 기사화 된 후에는 더 이상 소식이 없으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자의 죽음은 사인 등으로 오랜 기간 실려진다. 사망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마음에 주는 충격은 더 심해진다.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가던 친구의 40대 초반의 아들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다. 가난했지만 좋은 대학을 나왔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지만 3일 전에 만났을 때는 쾌활하게 웃었는데…. 아직도 나의 귀에 그의 목소리의 울림이 끝나지도 않은 오늘 아침에 사고로 인한 부고소식을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시간이 날 때면 대리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도와 왔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누구나 삶에서 한 맺힌 이야기꺼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이별을 할 때, 남아 있는 보호자에게는 `마음 놓고 펑펑 울어버려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은 복잡하다. 아침에 출근했다고 해서 저녁때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사회가 됐다.

근래에는 이상한 죽음도 있었다. 국가를 떠들썩하게 했던 어느 기독교 종파의 창시자가 죽은 지 오래되어, 부패해서 사망원인 불명의 시체로 발견됐다. 그는 종파의 교주가 되고, 재력가로 변신되면서 가면 속에서 살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마치 사람들을 모두 바보 같이 취급하면서 이끌어 가다가 구더기 속에서 거의 짐승 수준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돈이 큰 변수였다고 추론된다. 종교는 돈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에는 거룩하고 귀한 죽음, 일반적인, 또는 천한 죽음이 있다. 성경의 열왕기 상, 하에는 아합이라는 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정치를 잘 했으나 그 후 20년간 이 땅의 권력과 부를 전부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다. 그 부귀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황금마차를 타던 임금은 시체가 되어 달구지에 실려 운구 됐다. 길 위에 흔근히 흘린 피를 개들이 핥아 먹었다. 그 아들 요람도 악하여 신하가 쏜 화살에 염통을 맞아 죽었다. 시체는 아버지가 가난한 소유주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포도밭에 버려 졌다. 요람의 어머니 이세벨은 나쁘게 섭정하다가 그녀를 섬기는 내시들이 창밖으로 던져서, 개들이 그녀의 살점을 먹어버렸다. 남아 있는 부위는 두골, 손바닥, 발뿐이었다.

남겨진 부위 세 곳은 `손바닥은 뭘 잡고 살았느냐? 발은 어디를 돌아다녔느냐? 안테나인 머리는 인생의 주파수를 어디에 맞추고 뭘 의도하면서 살았느냐?`등을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 해답은 `우리는 땅에 살지만 머리는 하늘에 주파수를 맞추고,손은 의로움을 붙잡고, 발은 진리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은 남의 것으로 생각해서 `다 죽어도 나만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한다. `젊어서는 신나게 즐기면서 살고 나이가 차면 그때, 성실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미래를 알 수 없다. 이런 `알 수 없음`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마음은 선악이나 인간성은 외면한 채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고, 세상에서 부귀로 이목을 끄는 인간이 되라는 강력한 유혹을 받는다. 선악 간에 무슨 일에든 열심을 내고, 악과도 적당적당한 흥정이 필요하다고 유혹한다.

죽음이 닥치면 인간은 어디로 가게 되는가? 그때는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죽음은 최고의 축복이다. 죽음은 새 옷을 갈아입는, 좋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죽지 않으면 항상 헌 옷만 입을 뿐이다. 안 죽는 것보다 더 큰 저주는 없다.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면 철저히 우리의 생각은 뒤집혀져야 한다. 헌 옷을 벗어버리려면 평소에 보던 물질이나 명예 등을 추구하는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걸어가야 겨우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종교와 재물이 결합되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죽음은 인생을 마지막으로 정리하여 성장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죽는 이별을 연습하여 준비하는 자는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삶의 자취를 아름답게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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