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틸러스 축구장에 들어서면 본부석 맞은 편에 낯익은 인물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포항스틸러스구단이 지난해 창단 40년을 맞아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13명의 레전드들이다. 이들 가운데 홍명보 전 브라질 월드컵 축구감독의 얼굴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홍 감독은 지난 90년 국가대표가 된 뒤 12년간 `영원한 리베로`란 별명으로 한국축구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그라운드를 내달리며 보여준 홍 감독의 어린아이와 같은 해맑은 미소는 아직도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감독을 맡아 숙적 일본을 꺾고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의 감동을 국민에게 선물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다.
그런 축구 영웅이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역적이 되다시피 해 온갖 비난을 감당하고 있다. 과연 홍 감독 혼자서 책임질 문제인지 되짚어 봐야 한다.
이번 월드컵에는 대륙별 지역 예선을 거친 32개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 출전 당시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57위였다. 월드컵 참가국 32개국 가운데 31등으로 꼴찌 다음이었다.
우리나라 K-리그 현실 또한 참가국들과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다. 지난해 K-리그 평균 관중은 7천656명. 3만 명을 훌쩍 넘는 유럽 리그 평균 관중 수의 30%에 미치지 못한다. K-리그 경기장은 매번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고 TV중계조차 없을 정도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수십만 원의 입장료에도 연간 입장권이 매진되는 유럽리그나 전세금을 빼내 해외원정 응원까지 다니는 남미 국가들의 축구 열정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인구대비 축구 관중 비율을 따지면 0.5% 수준에도 못 미친다. 연중 프로축구경기장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국민이 대다수라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면 전 국민이 축구 광팬이 되고, 또 축구 전문가로 돌변해 선수와 지도자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이런 형편없는 축구 기반 위에서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16강 탈락은 당연하고 오히려 전패를 당하지 않은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월드컵 축구팀에 쏟아지는 비난은 마치 자식의 성적이 꼴찌에서 맴돌고 있는데도 평소 관심을 갖지 않았던 아버지가 막상 대입시험 치르고 나서 “왜 서울대에 합격하지 못했느냐”고 닥달하는 꼴이다.
기독교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성경 요한복음 8장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께 끌고 와 “모세 율법에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하였다”며 처벌을 묻고 있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다.
우리의 비참한 축구 현실을 만든 국민 누구도 홍명보 감독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 축구장 한 번 찾지 않고 무관심했던 우리 모두에게 월드컵 실패의 책임이 지어져 있다.
더욱이 명문대학 진학을 요구하는 성적지상주의 학교교육과 과정이 무시된 성과가 정당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는 우리의 사회구조는 더욱 문제다. 성적만이 모든 평가의 잣대가 되는 이런 사회구조에서 유능한 지도자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 현재 축구 토양으로는 아무리 세계적인 명감독이 온다 해도 그들 역시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역대 국가대표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명성만 더럽힌 채 쫓겨나는 전철을 되풀이할 것이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비난과 질책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의 바탕 위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국민들이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사랑의 텃밭이 조성돼야 희망의 싹을 피우고 전략과 전술, 제도개선 등의 곁가지를 뻗어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