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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의 현장 `기묘한 동거`

권광순기자
등록일 2014-07-22 02:01 게재일 2014-07-2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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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 뱁새에 맡겨지는 뻐꾸기 새끼<BR>안동 한 주택 딱새 둥지서 키워지다 발견돼<BR>딱새 어미새 헌신적 보살핌 애처로움 더해
▲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서 기르게 하는 탁란의 습성을 가진 뻐꾸기의 대표적인 희생양은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인데,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의 한 주택에서 딱새 둥지에 탁란한 희귀한 모습이 발견됐다. 20일 오후 불과 3주 만에 자신보다 몇 배나 덩치가 커버린 뻐꾸기 새끼에게 딱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 먹이고 있다. /이용선기자

자신이 낳은 알을 다른 새에게 맡겨 기르게 하는 대표적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일명 `탁란`을 통해 종족을 번식한다.

사람으로 치면 자식의 육아과정을 통째로 남에게 몰래 맡긴 채 떠나버리는 `얌체 맘`인 것이다.

뻐꾸기가 대체로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에게 탁란하던 것과는 달리 딱새에게 맡겨져 기르는 장면이 본지 취재진에게 포착됐다.

20일 오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땅고개` 부근의 한 주택 뻐꾸기 탁란 현장.

앞서 지난 7일 류희숙(56·여)씨는 처마 밑에 보관 중인 곡식 분량을 측정하는 데 쓰는 사각 나무그릇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류 씨가 수일 째 관찰했더니 몸집부터 색깔까지 어미 새와 너무 달랐다. 확인 결과 어미 새는 10cm 크기의 딱새였고, 새끼는 뻐꾸기였다.

태어난 지 3주 가까이 된 뻐꾸기 새끼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어미보다 3배 이상이나 커져 버렸고, 생존 본능에 따라 아예 제 집인 양 딱새 둥지를 독차지했다.

둥지를 꽉 메울 정도로 커져버린 탓에 어미 딱새도 그만큼 바빠졌다. 처음에는 1~2시간 마다, 이제는 20분 단위로 곤충이나 벌레 따위를 잡아 먹이거나 배설물을 제거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정성스레 돌보고 있다.

“자기 것이 아닌 알을 품어 부화시키고 먹이까지 주는 것을 보면 신기하지만 뻐꾸기가 얄밉고 매우 이기적인 새인 것 같아요”

류 씨는 새끼 뻐꾸기가 딱새 알 2개를 슬쩍 둥지 밖으로 밀어 낸 것을 목격한 이후 제 자식인 양 아무것도 모르는 어미 딱새가 그저 불쌍하게 보였다.

남의 둥지에 얹혀산 뻐꾸기는 3주가 지나면 독립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성체로 자란 뻐꾸기가 알을 낳을 때 자신을 돌봐준 탁모와 같은 종류의 새 둥지에 알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그곳이 새끼가 자라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경북대 조류연구소 박희천 교수는 “주로 작은 새의 둥지에 침입해 자신의 알로 바꿔치기하는 뻐꾸기의 습성은 딱새에게도 드물게 나타난다”면서“공교롭게도 이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숙주새는 친자식처럼 새끼를 헌신적으로 키운다”고 말했다.

△탁란(托卵) = 새나 물고기 등 같은 종이나 다른 종 개체에게 알의 부화와 새끼 양육을 맡기는 기생 행동으로 행하는 쪽은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는 부담을 피할 수 있지만 반대로 당하는 쪽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자신의 종족을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동/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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