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앤드루 존슨 대통령 시절, 윌리엄 H. 시워드(1801~1872)라는 국무장관이 있었다. 시워드 장관은 링컨 대통령을 곁에서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당시 정치적 수완은 링컨 보다 시워드가 더욱 높다고 평가됐기에 사실상 링컨보다 시워드가 더욱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시워드는 10년 넘게 미국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뉴욕 주지사를 두 차례나 지낸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형성 초기에 수년 동안 공화당의 지도적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시워드가 공화당 경선에서, 단 한 차례 하원의원을 지낸 링컨에게 패배한 것은 큰 이변이었다. 처음에는 쉽사리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쉬워드였으나 결국 링컨의 대통령 선거 유세에 합류해 링컨의 대통령 당선을 이끄는 일등 공신이 된다. 처음엔 쉬워드 자신이 링컨보다 정치력이나 국가 경영 능력이 우월하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에서 대통령 링컨을 보필하면서 링컨의 탁월한 지도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시워드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드러났다. 쉬워드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더 이상 링컨과 대립하지 않았으며, 국무장관으로서의 자신의 임무에 충실 한다. 위대한 능력자가 오히려 자신을 겸손히 낮췄기에 링컨 내각에서 시위드의 정치력은 탄탄대로의 꽃을 피웠다. 본래 링컨은 노예제 폐지에 대해 다소 온건파였지만, 슈어드는 강경파로서의 노예제 폐지 입장을 확고히 했다. 시워드 장관은 노예제가 옳지 않다는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도망친 노예들을 자신의 집에 받아들여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했다. 시워드의 링컨의 환상적인 정치적 조합은 훗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으로 내세우면서 미국인들에게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시워드 장관은 미국의 세계적 패권 유지와 미국의 실질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태평양 연안 극한 지역까지 미국의 영토가 확대돼야 한다는 신념을 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러시아 영도였던 알래스카 매입에 나섰다. 알래스카는 한반도 7배의 넓이로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서쪽 끝에 있으며 지질학적으로 북태평양화산대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얼음의 나라인 알래스카는 울창한 원시림, 3천여 개의 강, 3백만 개의 호수, 5천여개 이상의 빙하, 빙산 등이 모두 하얀 장막 안에 숨을 쉬고 있는 눈의 나라이다. 한동안 모피 생산으로 각광받던 알래스카는 이 무렵 모피가 고갈돼 러시아에겐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가져오기 위한 시워드 장관의 알래스카 매입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내 반대 여론은 뜨겁게 들끓었다. 반대의 이유는 이렇다. 미국이 남북전쟁 직후에 남부의 산업화와 서부 개발이 먼저였기 때문에 당시 720만 달러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알래스카를 구입하겠다는 시워드의 제의에 대해 미국 의회와 여론은 매우 부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시워드의 이름을 따서 `시워드의 바보짓(Seward`s Folly)`이라는 정치적 유행어로 시워드를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워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워드는 알래스카 매입을 자신 정치 인생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하며 “한 세대 후의 미국 사람들은 알래스카의 가치를 반드시 깨닫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니나 다를까,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알래스카 땅을 파보니 석탄, 석유 등등 풍부한 광물 자원이 발견됐다. 특히 알래스카의 석탄은 세계 1위의 매장량이다. 알래스카의 효용 가치가 알려지자 많은 미국인들이 알래스카로 이주를 했다. 이주자를 위한 주택 건설을 위해 땅을 파보니 금(金)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제2의 골드러시로 이어졌다. 제2의 골드러시로 인해 당시 한 해 채굴된 금 값이 720만 달러가 훌쩍 넘었다. 시워드 장관의 예견대로 알래스카는 정말 소중한 영토였고, 미국에서 가장 잘 사는 주(state) 중에 하나가 됐다.
청와대에서 관련분야 전문가에게 총리와 장관을 맡기고 싶어도 인물이 없다고 한탄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현재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다. 시워드 장관처럼 국가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고집`을 끝까지 꺾지 않는 위대한 인물이 우리나라 정치계도 많이 배출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