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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삶 아우르는 진지한 성찰세계 보여줘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7-04 02:01 게재일 2014-07-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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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지음  창비 펴냄, 102쪽
서정적 감수성과 기발하고 활달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독특한 어법을 구사하며 개성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안현미 시인의 세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가 출간됐다.

“새로운 감수성과 삶의 힘을 감싸안는 웅숭깊은 서정”과 “진솔함의 미덕과 상상력의 힘을 합체하는 타고난 언어감각”(박형준)으로 2010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이별의 재구성`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어둠속의 불우한 현실을 감싸안으며 시와 삶을 아우르는 진지한 성찰의 세계를 보여준다.

감각적인 언어유희가 도드라지는 가운데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거름으로 하여 삶의 밀도 있는 체험이 눅진하게 녹아든 시편들이 먹먹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감성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그는 여행자 배롱나무의 동쪽을 다녀온 자 無에서 꺼내온 시간을 들고 방금 막 도착한 자 현 없이도 울음을 데리고 아름다움에 참여하고 있는 자 그는 여름 바람 앞의 미루나무, 사랑 옆에 서 있는 여자, 야생 두릅을 삶아서 먹는 저녁 밥상, 미지의 곳을 헤매다 돌아오는 여행가방, 분노로 빛나는 물항아리, 질문하는 구름 그는 무릅쓰는 자 불행과 고독 무의미와 어둠 중력과 천민자본주의 불가항력과 부조리를 끝끝내 무릅쓰는 자 삶은 고독 삶은 부조리 삶은 학살의 일부”(`시마할` 부분)

진솔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안현미의 시는 “미래의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이별수리센터`) 연서(戀書)이다. 그 자신이 가난하고 외롭고 꿈조차 사치였던 `고장난` 시절에 시로 위로받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험준한 세상에 시인은 “사랑의 부재 또한 사랑”(`그도 그렇겠다`)이고 “인생이란 원래 뭘 좀 몰라야 살맛 나는 법”(`카이로`)임을 깨달으며, 삶의 “강 옆에서 물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삐아졸라를 들으며 나는 내가 다 지나가기를 기다”(`아버지는 이발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이자 미용사였다`)리는 애틋한 마음으로 “사소했지만 힘겨웠던”(`전갈`) 상처투성이의 시절을 달래고 위무한다.

“결혼 후 한 계절이 지났습니다 입덧이 시작됐고 제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있습니다 너무 서둘러 시집왔나 생각해봅니다 입안이 얼얼하고 간혹 어린 엄마였던 언니가 너무 사무칩니다//삶의 비애를 정확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테지만 나를 보아 너무 서둘지 않아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어리고 영민한 여자가 현모양처가 되기란 동서남북 이 천지간에서 얼마나 얼얼해야 하는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고 싶었던 행복을 얼음처럼 입에 물고 너도 곧 엄마가 되겠구나 무구하게 당도할 누군가의 기원이 되겠구나 여러 계절이 흘렀으나 나는 오늘도 여러개의 얼음을 사용했고 아무도 몰래 여러개의 울음을 얼렸지만 그 안에 국화 꽃잎을 넣었더니 하루 종일 이마 위에 국화향이 가득하였다 그 향을 써 보낸다 그저 얼얼하다 삶이”(`내간체` 전문)

2001년 등단한 이후 주목할 만한 젊은 시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해온 시인도 어느덧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삶을 인용해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불혹”(`불혹, 블랙홀`)의 나이를 넘겼다. “거울도 지도도 없었고 그저 눈물뿐이었”(`어떤 삶의 가능성`)던 시절, “살 수도 살지 않을 수도 없는(죽을 수조차 없는) 그런 날”(`화란`)들의 “신산한 삶이 남긴 상처를 녹여내”(`화면조정시간`)고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바라보”(`불혹, 블랙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유희하”고 “연희하”고 “환희하는 자”(`연희-하다`)로서 시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앞도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세상”(`다뉴세문경`)과 “다른 차원의 시간이 열리”는 “새로운 인생”(`어떤 삶의 가능성`)이 움트는 시의 텃밭을 일구어나간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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