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 요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안대희 총리 후보에 이어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자진 사퇴하자 정홍원 국무총리를 유임시키는 `궁여지책`을 택했다.
특히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경우 친일사관이 문제가 돼 자진사퇴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문 후보자는 교회에서 있었던 강연 도중 우리나라 민족성과 식민지화와 관련, “민족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게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것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냈기 때문”이라고 했고,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어느날 갑자기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신 거에요.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거에요”라고 폄하했는 가 하면 친일파인 윤치호를 칭찬하는 발언 등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반일정서를 자극, 끝내 사퇴에 이르렀다. 국무총리 후보자로서는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지만 후폭풍 역시 거세다.
인사청문 제도에 대한 비판론이 그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아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사 청문 제도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의 청문제도와 같이 신상문제와 도덕성 검증은 인사청문회 이전에 비공개로 검증하고, 이후에 업무수행 능력 등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인사청문회 이원화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핵심 당직자들도 야당이 인사청문회 자체를 정쟁 수단으로 삼는 것을 시정하지 않고 계속 `정쟁의 장`으로 삼는다면 국정의 체계적·합리적 수행과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내각제에서는 인사청문회 제도가 없고, 대통령제 국가에서 몇 곳이 제도를 운영하는데, 이런 식으로 공직에 오르는 것 자체를 마녀사냥 무대에 오르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로 인사청문회가 마녀사냥식으로 지나치게 신상털기를 한다는 비판 여론은 꾸준히 있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위장전입 문제다. 멀리는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와 언론인 출신의 장대환 국무총리 서리 후보자를 위장전입 했다는 이유로 인준을 부결시켰다. 그후 수많은 장관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덫에 걸려 낙마해오다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자녀를 명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다섯차례에 걸쳐 위장전입했다고 시인하고도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된 후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후 한상대·천성관·김준규 검찰총장, 이귀남 법무부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하고도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듯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처럼 자녀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의 경우는 장관 낙마사유라고는 보지않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총리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나라 정책을 입안·조정·집행할 고위공직자를 뽑는 최종 절차인 인사청문회가 왜 정책입안이나 조정능력을 중점적으로 검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신상털기식 인사청문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인사청문회는 공직 후보자를 공격하고 매도하는 호통 청문회, 망신 청문회일 뿐이다. 이래서야 청렴하고 유능한 재사들을 어떻게 등용할 수 있을까.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경우도 청문회에 가기 전 자진사퇴하게끔 만든 것은 유감스럽다. 한두마디 말로 밝히기 어려운,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본인의 해명을 듣고, 어떤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되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혔어야 했다.
앞으로 있을 인사청문회에서는 모쪼록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국정 수행 능력을 중점적으로 검증하는 청문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