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로 날밤을 새는 이가 많아졌다. 나 역시 새벽녘 잠에서 깼다하면 TV화면에서 펼쳐지는 축구스타들의 펄펄 나는 몸짓에 눈과 귀를 뺏기고 만다.
`둥근 공`을 사용해서인지 축구 경기는 예상외의 결과가 잦다. 19일 새벽 열린 스페인과 칠레전도 그랬다. 이날 경기를 관전한 세계 축구팬들은 이변을 목격했다.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 리그 B조 2차전에서 스페인이 칠레에 0-2로 완패, 2연패를 당함으로써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날 패배로 `무적함대` 스페인 축구를 대표하는 브랜드 `티키타카(Tiki-Taka)`의 시대도 함께 저물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탁구공이 쉼없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의 스페인어인 `티키타카`는 세밀한 패스 플레이를 위주로 한 스페인 축구 스타일을 가리킨다.
티키타카의 유래는 이렇다. 지난 2007년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체격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짧은 패스로 볼 점유율을 극도로 끌어올려 상대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의 축구인 `티키타카`를 도입했다. 스페인은 이 스타일의 축구로 유로 2008에서 정상에 오르며 전성기를 열었다. 아라고네스 감독의 뒤를 이어 2008년 부임한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도 이를 이어받아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까지 제패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후 사비 에르난데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이상 FC바르셀로나), 사비 알론소(레알 마드리드) 등 `티키타카의 지휘자`들은 세계 축구를 주름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힘과 체력을 앞세운 압박전술에 티키타카는 고전하는 일이 잦아졌다. 스페인 대표팀처럼 티키타카를 구사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가 지난해 5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대표주자인 바이에른 뮌헨에 패배하면서 이런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이 브라질에 0-3으로 완패하면서 우려는 심화됐다. 티키타카 전술에 대한 공략법이 점차 드러나고 있음에도 획기적인 전술 변화없이 월드컵에 나선 스페인은 결국 브라질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페인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의 아르엔 로번과 로빈 판 페르시에게 속수무책으로 1-5 완패를 당했다. 스페인은 이날 칠레와의 2차전 경기에서도 미드필더 지역에서부터 볼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 등 기대 이하의 플레이끝에 무릎을 꿇었다.
손자병법에 `형병지극 지어무형(形兵之極 至於無形)`이라고 했다. 즉, 최고 경지의 전법은 형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승리를 거둔 전술은 반복해서 쓰지 말고 무궁하게 변형해 사용해야 한다. 싸움은 상대가 있는 법이므로, 전술은 상대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고,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전술이란 물과 같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전술도 방어가 철저한 곳을 피해 허점을 친다. 물이 땅을 따라 흐르며 모양이 만들어지듯이 전술도 적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된다. 물에 일정한 형태가 없듯이 싸움의 흐름도 늘 변한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르면 방법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7대 병법서 가운데 하나인 `사마법`에도 `무부선술(無先術), 즉 `앞서 써먹었던 전술은 다시 쓰지 말라`고 했다.
옛날 중국의 침략을 받은 고구려는 수양제와 당태종의 공격을 연달아 같은 전술로 막아냈다. 두 번 다 방어에 성공했지만 적에게 전술이 어떻게 승리로 이어졌는 지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기존의 작전계획을 고집했다. 그 결과는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월드컵 무대에서 티키타카의 몰락은 우리 사회에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왜 필요한지를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