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막을 내린 6·4지방선거는 우리가 사는 경상북도와 대구의 삶과 현실 그리고 극복해야 할 모순들이 고스란히 담긴 거울이라 하기에 충분한 결과를 남겼다.
지난 6개월 남짓한 기간에 가히 집중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이곳의 선거를 돌이켜보면 희망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는 여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국에서 대선 주자들이 광역단체 주민에게 인정 받은 다음 국민에게 나아가겠다는 야심찬 구도가 6월4일 자정을 전후해 속속 성사됐다. 하지만 이곳 3선 도지사의 영광은 왠지 경북 전체가 나누기엔 불안한 기미가 역력하다.
특히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에는 신인 단체장을 얻고도 패배주의 마저 감지되고 있다. 박승호 전 시장의 무기력함에 대한 조소마저 나왔다. 요약하면 `3선을 그냥 누리지` 또는 `왜 해묵은 네거티브를 했느냐` 정도이다. 반박을 대신하면 `개인적 영달을 포기한 정치적 용기` 또는 `외로운 폭로(정장식)가 아닌 전략적 동지(권오을)를 만난 연대적 후보 검증`이 아닐까.
하지만 이제 필요한 일은 과거지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아니다. 어쨌든 오랜 경륜과 도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사의 영예를 안은 김관용 지사가 남은 공직 인생을 걸고 무엇을 이뤄내야 하는가이다.
김 지사는 4년 전 선거에서 `신도청 북부권 이전` 카드를 꺼내어 대마(大馬)로 활용했다. 유치 경쟁에 가세한 포항은 북부권 주민들의 애끓는 낙후지역 호소에 이전 부지 결정을 깨끗이 받아들였다. 포항 출신인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도 고향사람들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북부권 균형발전의 당위성을 설득해 나갔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대구가 지금 위기를 느낄 만큼 도청 이전의 효과는 엄청난 파급을 현실화하고 있다. 세종시가 상징하는 충청권의 수도권화는 낙후의 상징이던 경북 북부권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안동은 말할 것도 없고 봉화와 영주도 백두대간을 활용한 산림과 테라피의 기린아 도시가 예고되고 있다. 이러니 경북 동남권의 신 낙후지역 위기의식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산업 다변화는 물론 포스코 불패라는 열매에 안주한 채 도시 발전의 정체에 대비하지 않은 포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경북 제1도시라며 우쭐해 원근(遠近) 지자체 간 협력에 소홀한 측면도 크다. 인접한 경주와는 상수원 문제로 갈등했고 포항대게를 홍보하자 영덕과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지역정치인들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포항과 경북도가 과연 제대로 협력했던가? 민선 부활 이래 포항시장은 경북지사의 경쟁자였다. 그 중간에서 어부지리를 취한 이도 있었다.
따라서 이제 공직과 삶의 대장정을 정리할 마당에 선 김관용 도지사는 포항의 위기 극복을 도와주는 리더십으로 경북 전체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위업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지역의 상상력에서 독일의 영화 거장 빔 벤더스의 1984년 작 `파리 텍사스`(PARIS TEXAS)의 상황을 가정해본다.
파리와 텍사스, 어울리지 않는다. 50여년전 파리를 떠나 첫 미국 여행길에 선 당대 지성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눈에 비친 텍사스 사람들처럼 이 둘은 이방인에 가깝다. 낭만과 풍요로움의 상징인 파리, 그리고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남성과 보수성의 이미지인 텍사스.
감독은 황량한 텍사스의 사막 한 가운데 마을에 나타난 상처 받은 남녀들을 통해 파리의 황홀감을 찾아 떠난 영혼들의 상실감을 극대화한다.
지난 40여년 간 해양이 상징하는 낭만과 활력, 철강산업의 호황을 누렸던 포항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 경상북도는 대한민국 보수의 상징이지만 유교의 본산 답게 의리와 절제의 가치가 존중되는 곳이다. 내륙과 해양이 조화된 경북에서 한 축을 형성해온 포항의 쇠퇴는 영화 속 `파리 텍사스` 같은 상황을 몰고 올 것이다. 낭만과 활력을 상실한 이중의 정체 도시 포항이 이제 새로운 발전의 희망에 찬 경북 전체에 언젠가 재앙이 될 수 있다면 지나친 상상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