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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비 내리면 황무지는 끝나고…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6-20 02:01 게재일 2014-06-2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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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이문재 지음 문학동네 펴냄, 228쪽

`제국호텔`이후 10년 만에 내놓는 이문재(55)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지금 여기”라는 화두는 시인의 시를 읽어온 독자들에게 그리 낯선 주제가 아니다. 시인은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한 이래 어쩌면 그보다도 일찍부터 지금 여기라는 화두를 노상 품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미래를 근심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그간 적도에서 눈썰매 타기(“자메이카 봅슬레이”), 유전자 속 그리움의 정보, “무위로서의 글쓰기” “은유로서의 농업” “인간중심주의” “세기말” “언제나 접속되어 있는 e-인간들” 등을 지금 여기에서 발견하거나 발명해왔다. 10년 전 시인에게 지금 여기가 디스토피아 또는 멋진 신세계였다면 그래서 시인이 언플러그드, 전원(電源)으로부터 절연을 이야기했다면, 이제 그는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는 새로운 인식에 도달한 듯하다.

모두 85편의 시가 실린 `지금 여기가 맨 앞`은 4부로 나뉘어 있다.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각 부의 키워드를 `봄` `중년성` `사랑/죽음` 그리고 `시공간의 사회학`으로 포착해 `지금 여기가 맨 앞`을 읽는다. 그리고 그는 이 시집 옆에 90여 년 전 씌어진 T. S. 엘리엇의 시`황무지`를 불러내 나란히 놓는다.

`황무지`가 그러하듯이 이 시집도 봄날의 풍경들과 함께 시작됐는데(1부), 이 시집의 `나`는 `황무지`의 5절(`천둥이 들려준 말`)에서도 울렸던 그 천둥소리를 듣고서 자신의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했고(`천둥`), 그래서 그는 런던의 음산한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황무지`의 어부왕처럼 일단 제 자신의 재생을 도모하기 위해 자작령 꼭대기에 오르고 나서는(2부), 역시나 `황무지`의 뭇 주인공들처럼 우리 시대의 사랑과 죽음에 대해 성철하다가(3부), 더 구체적인 생활세계로 하강하여 이와 같이 대안적 상상력을 찾고 있다(4부). 그렇다면 이 시집이, 사막에 비가 내리며 끝이 나는 `황무지`처럼, 사막이 초원으로 바뀐 저 기적의 순간에 끝이 난대도 좋지 않을까.

한 세기 전의 시인 엘리엇에게 지금 여기는 1차 대전 이후의 유럽사회였다. 신형철은 그래서 `황무지`의 시인이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는 생각에 더 잠겨 있었을 거라고, 그러나 현재의 시인 이문재는 “가장 간절한 간절함으로”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라는 인식에 도달했을 거라며 두 텍스트의 간극까지 함께 읽어낸다.

다른 한편 이 간극은 이문재 시인이 지난 10년을 통과하며 겪은 마음의 이력, 모종의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지금 여기가 맨 앞`전문

▲ 시인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는 구절에서 “지금”은 시간적으로 종말을, “여기”는 공간적으로 벼랑을 뜻한다. 그렇다면 시인은 우리더러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하려는 걸까. “네번째 시집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왔다”는 고백이 앞서 나왔던 것은 벼랑일지 모를 종말일지 모를 “맨 끝”을 “맨 앞”으로 그러니까 이를 변증법적으로 또 전위적으로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일 것이다. “땅끝”이 “바다의 끝” “물끝” “땅의 맨처음” “땅의 시작”이라는 각성도 그래서 함께 가능하지 않았을까.

10년 전 시인의 벗 고종석은 `제국호텔` 발문에서 “걸음은 이문재 삶의 거름이다”라고 얘기한 적 있는데, 시인은 그간 10년을 줄곧 “홀로, 두 발로, 꾹꾹 지문 찍듯이 걸어” 땅의 끝까지 간 것일까. 그리고 땅끝에서 한참 바다를 마주한 끝에 왈칵 눈물 쏟고 온몸이 환해진 다음 “이윽고 땅의 끝에서 돌아”서서는 “땅의 맨 처음”을 새삼 인식한 것 아닐까.(`땅끝이 땅의 시작이다`) “땅바닥”이 사실은 “하늘의 바닥”, “언제나/ 꼿꼿이 서 있는” “땅의 머리” “땅의 정수리” 아니겠느냐는 깨달음도 그렇게 함께 오지 않았을까.(`바닥`)

이문재 시인은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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