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가 시끄럽다. 줏대를 잃은 촛불이 그 연약한 하늘거림으로 길거리에서 몸 애교를 부리고 있다. 그 투정에 현혹 된 사람들이 주문처럼 뭔가를 외친다. 진상규명(眞相糾明)! 다시는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말라고 했건만, 제 할 일을 잃은 촛불이 어둠은 아니 밝히고 사람만 유혹하고 있다. 본분을 잃은 촛불부터 진상규명을 해야 하는데 순서가 잘못 됐다.
4월, 5월을 어떻게 참았을지 궁금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도 시끄럽다, 뒷북 코리아, 아니 냄비 코리아를 증명이라도 하듯! 거리마다 넘치는 공해들을 누가 정화할지. 모두가 저마다 해결사라고 떠들어대지만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필자 눈에는 다 한 종족 같다. 한탕에 목숨 건 한탕족! 이제 우리를 한민족 대신 한탕족이라고 해야겠다. 국가 개조를 열심히 외쳤는데, 국가 개조 대신 민족 개조가 되고 말았으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는가.
한탕족의 피는 오로지 하나 뿐이다. A형도, B형도 아닌 오직 I형. I형들 마음엔 `우리는 없고, 오직 나(I)만 있다. 그들의 귀는 이미 퇴화를 마친지 오래다. 그래서 I형들은 들을 수 없다. 그들의 머리엔 다름은 없고 틀림만 있다. I형들은 틀린 그림을 찾느라 늘 바쁘다. 찾기만 하면 다행인데 그들은 꼭 자신들의 뜻대로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 간혹 그 과정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절대 용서하지 않고 방정맞은 촛불을 앞세우고 몰려간다.
그래서 요즘 길엔 공해가 심하다. 공해도 이런 공해는 없다. 길마다 공해물질이 넘치는 대한민국. 세계 최고의 공해물질은 분명 사람이다. 얼마 전 학생들과 아침 시간에 부화뇌동(附和同)이라는 문구를 같이 썼다. 그리고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해줬더니 처음에는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최근 우리나라와 관련 뉴스를 잘 생각해보라고 했더니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4월 진도 참사로 아마도 세상에 제일 부각된 말이 골든타임이 아닐까 싶다. 골든타임을 놓쳤기에 우리는 정말 수많은 어린 목숨들을 가슴에 묻을 수밖에 없었다. 목숨과도 같은 시간, 골든타임! 골든타임은 결코 길지 않다. 놓치면 되돌릴 수 없기에 더 귀한 시간이다. 골든타임은 바로 제한시간이다.
I형이 넘치는 우리 사회는 지금 골든타임, 즉 제한 시간에 걸려 있다. 하지만 I형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들은 귀가 없기에 이 나라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나라에는 I형들에게 귀를 그려줄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는 없다. 길거리마다 넘치는 저 수많은 선거 유세들, 휘황찬란한 선거 전단지 어디에도 그런 공약은 없다. 모두가 `나(I)`뿐이다. 유세를 듣고, 전단지를 보면 이 사회는 분명 엄청난 문제점을 안고 있는 나라다. 그들은 명석하게도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했고, 자신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다. 분명 문제와 원인은 있는데,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는 그 어떤 내용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자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I형다운 발상이다. 물론 필자도 I형 피를 가진 한탕족이 돼 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 귀가 덜 퇴화됐는지 이 사회의 마지막 숨넘어가는 소리가 너무도 잘 들린다. 귀를 지우려 할수록 귀가 더 크게 그려지는 것은 왜 일까.
이 사회보다 더 빨리 필자의 숨이 넘어가려 할 때 필자는 교육청의 지시에 따라 지난주에 신안군으로 본교 특성화 교과의 하나인 산지여정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폭염경보가 내려진 `짱뚱어 다리` 위에서 필자는 이 사회의 숨을 틔울 답을 찾았다. 짱뚱어와 농게들이 공존하는 갯벌에는 분명 다르면서도, 같은 방식의 삶이 있었다. 다름으로써 같고, 같음으로써 다른 것이 건강한 갯벌의 원리임을 짱뚱어와 농게는 수 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공존의 가치이며, 공존의 방법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은 오직 이 나라 국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