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우리를 슬프게 한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문득 발견될 때. 그곳에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네 행동 때문에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라고 씌여 있을 때.”
독일 작가인 `안톤 슈낙`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이 수필은 오랫동안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감수성을 배가시켰던 이 내용이 우리를 더욱 가슴아리게 하고 있다.
생각조차 하기싫고 답답한 가슴을 더욱 짓누르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 진행중인 사건에 수많은 아픔이 녹아져 있지만 또 다른 아픔이 필자를 괴롭히고 있다.
아들을 잃은 한 아버지가 국민세금을 낭비할 수 없다며 장례용품을 가장 싼 걸로 골랐다는 소식이다.
단원고 학생의 이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가장 싼 41만6천원짜리 수의와 27만원짜리 관으로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가장 비싼 수의의 가격은 무려 400만원으로 이 가격과 무려 10배나 차이가 났다. 특히 아들은 180cm가 넘는 덩치라 비싼 특수관을 써야만 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국민세금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비싼 것을 쓸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아들은 검도 3단의 유단자로 사고당시 자신이 입고있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그 아들에 그 아버지 였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어처구니없이 사라지는 모습이 우리를 너무나 슬프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슴적시는 사연을 뒤로하고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수만가지의 분노는 아예 제쳐두고라도 이해하지 못 할 부분이 관의 행태다.
아이의 시체를 실적으로 잡기위해 민간이 건져올린 사체를 양보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국가기관이 민간 잠수부가 건져올린 시신을 실적 부풀리기에 활용하기 위해 양보해 달라고 했다니 이런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실적이 중요하다지만 학생의 시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너무나 비통할 따름이다. 이러한 행태는 임진왜란당시 조선군사의 코를 베어 실적으로 삼은 일본의 행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소식을 들은 죽은학생의 부모마음이 어떻겠는가. 백번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있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있을 때 공무원들은 바로 옆의 분향소에 나가 일하면서도 출장수당을 꼬박꼬박 챙겼다는 것이다.
경기도, 경기도교육청, 안산시 등은 사태수습을 위해 비상대책반을 가동, 200여명에 달하는 공무원들이 원 근무지에서 15~30분정도 거리의 곳에서 일하면서 근무지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관외 출장수당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공무원이 장례식장, 분향소에 파견돼 받는 수당은 하루 8만~1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공직자로써 법이 허용한 테두리내에서 출장비를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사비를 들여가면서 자원봉사를 하는것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부끄러운 행태라고 보여진다. 분향소에 수많은 조문행렬과 시민성금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 공무원이 출장비를 반납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참으로 가슴이 미어진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공무원들이 세월호 참사를 키웠다는게 속속 밝혀지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공무원들의 작태는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