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초등학교 2학년 아들 녀석이 너무 귀여워서 품에 꼭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얼굴 뽀뽀에 가만히 있던 아들이, 이번에는“아빠, 남자끼리 이러는 것 아니에요”란다. 이제는 자기가 어린 소년이 아닌, 남자라며 성숙한 티를 낸다. 필자의 눈에 9살짜리 아들은 여전히 연약하고 어린 소년일 뿐이다. 하지만 아들 스스로는 이미 다 자란 `남자`란다. 그런 아들의 말이 우습고 귀엽다. 또 한없이 사랑스럽다. 자신이 다 자랐다고 믿고 있는 아들에겐 다소 미안한 말이지만, 소년과 남자는 분명히 다르다. 소년은 학생이지만, 남자는 스승이다. 소년은 소비자이지만, 남자는 생산자이다. 소년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남자는 도구로 일 한다. 소년은 질문 하지만, 남자는 해답을 제공한다. 소년은 산만하지만, 남자는 질서가 있다. 소년은 혼자 놀거나 끼리끼리 놀지만, 남자는 큰 조직을 구성한다. 소년은 충동적으로 이성과 불장난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가정을 이룬다. 소년은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지만, 남자는 성공을 이룰 전략을 가지고 있다. 소년은 돌봄 받기를 원하지만, 남자는 돌볼 사람을 찾는다. 소년은 현재에만 집중하지만, 남자는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충실하게 살고 미래를 묵묵히 준비한다. 소년은 인기를 추구하지만, 남자는 존경을 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은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리더가 되려면 성숙한 남자가 우선 돼야 가능하다. 리더가 되려는 남자의 필수 덕목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자신보다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무시하면서, 자기 스스로 잘 났다고 여기는 교만한 사람은 결코 남자가 아니다. 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성숙 단계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돌봐야 할 구성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면서, 자기 뜻대로 구성원을 조정하려는 사람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리더가 될 수 없다.
소년에서 진정한 남자로 탈바꿈하는 성숙의 과정은 어린 시절에 어떠한 대인관계를 경험하며 성장하였는가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또한 어린 시절 경험하게 되는 대부분의 대인관계는 부모와의 대인관계가 밑바탕이 된다. 부모는 자녀의 바른 대인관계 형성의 결정적 존재다. 부모로부터 올바른 대인관계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비록 육체적으로는 남자가 됐다 해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소년 상태로 남아있다.
현재 야당의 공동대표이며, 유력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한 유명 정치인이 수년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자신의 어린 시절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 기억난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모로부터 늘 존댓말을 들으며 자랐다고 했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과 대화하고 교육 할 때, 하대(下待)하지 않고 높임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방송 진행자들은 그의 부모의 자녀 교육법이 독특하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당시 방송을 직접 시청했던 필자의 생각은 180° 달랐다. 그런 자녀 교육법이 정상적인 방법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높이고 공경해야 할 부모로부터 오히려 존댓말을 듣고 자란 소년의 경우, 자신의 자존감 형성에는 다소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섬기며 낮은 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겸손을 정상적으로 배우기에는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접받고, 섬김 받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랐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소년 시절의 생각과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한, 겉모습만의 남자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자의 우려와 예상은 적중했다. 최근 그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서 남자의 모습을 찾아보기란 매우 힘들다. “철부지 소년 정치인”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그는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