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생활을 뒤돌아보면 매일의 삶은 괴로움과 고뇌의 연속이다. 짧은 행복과 지루한 불행은 서로 교차하면서 인생을 이어 나간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 도전하여 성취해 내는 시간이나 가족과 오순도순 모여서 즐겁게 보내는 시간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이런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가정의 심각한 문제일 때는 그 시간에도 우리는 괴로움을 느낀다.
행복은 헌법에서도 시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했고 미국의 제퍼슨도 시민들에게 생명권, 자유권에 더하여 행복추구권이 있음을 밝혔다. 행복한 시간에는 기쁨만을 느낀다.
기쁨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낮은 단계의 기쁨에는 단순히 즐거웠거나, 의도하던 작은 것이 이뤄졌을 때에 가능하다. 그 다음 윗 단계로는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려서 전체적으로 이뤄졌을 때 느끼는 기쁨이다. 그는 만족한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장기적으로 영속되지 않는다. 제일 수준이 높은 기쁨은 가장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 왔던 사실을 해 내었을 때이다. 인생에서 삶의 원칙을 발견하거나 자기의 잠재력을 가지고 사명을 실현했을 때 또는 종교의 깊은 경지를 어렴풋이나마 느껴 질 때 그는 최고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기쁨에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재벌이 되려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재벌도 자기 나름의 고뇌가 있다. 그들은 우리가 느끼는 것 보다 더 많이 행복을 느끼지는 않는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큰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에 같은 지구에서, 삶에 부담을 느끼면서 버겁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행복은 부자로 산다고 하여 질병이 없다고 하여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외부의 일에서 만들어 지기보다는 인간 내부의 마음에서 생겨난다. 고뇌에 차거나 우울함 등 부정적인 생각으로는 행복과 기쁨을 만날 수 없다.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처음부터 “나는 능력이 없어! 해 봤자 안될 거야” 보다는 “능력이 없으나 최선을 다해 보자”는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이와 같이 행복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행복은 우선 내가 안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밝게 보이고,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뭣보다 주위를 잘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능력을 개발하고, 목표삼아 해야 할 일을 확정해 매진해야 한다. 나타나는 일들을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때 그는 조그마한 기쁨을 자주 느끼게 된다. 또 그것들이 모이면 하나의 큰 기쁨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때 기쁨이 곧 행복이다.
반복되는 숱한 괴로운 일이나 고뇌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스스로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처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신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절차를 통해 자기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면 점차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행복해 지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접어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고용일 뿐이다. 이런 정신은 지우려고 애를 써야 한다.
행복을 위하여 애를 쓰다보면 그 과정에서 많은 실패와 실수를 경험하게 된다. 혹자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맬 수도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그의 마음은 서서히 긍정적으로 변해 나간다. 점차 사랑과 인내, 그리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 즉 행복감을 갖게 된다. 어떤 이는 중년기 이후에야 비로소 어렵게 그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