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서로 다른 욕망을 품고 이 숙명의 장소로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런데 외교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화약이나 피로 해결하기란 더욱 어렵다”
“농부:우리네 삶이 어떠냐고요? 아주 힘들지요! / 나그네:무엇이 그리 힘든가요? / 농부:산다는 게 무엇에도 딱히 속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밑바닥까지 가봐야 할지도 모르는 게 우리네 삶입니다”
첫 번째 인용문은 `톨스토이 전집7-중단편선II`에 실린 `1855년 5월의 세바스토폴`에 나오는 내용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발판으로 발칸반도 쪽으로 진출하려다 영국·프랑스·터키 등 서유럽 열강들과 치른 전쟁이 크림전쟁(1853~1856)이다. 이 전쟁에서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낸 `세바스토폴 공방전`은 1854년부터 349일 동안이나 계속됐다. 이 치열한 공방전에 참가했던 청년 톨스토이가 `1854년 12월의 세바스토폴`에서 러시아 민중의 힘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면, `1855년 5월의 세바스토폴`에서는 그의 반전(反戰) 사상을 드러낸다.`1855년 8월의 세바스토폴`에서는 야전병원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의 모습과 요새가 함락당하는 장면들을 통해 `생명 존중과 반전(反戰) 사상`이 더 큰 생동감을 얻는다.
두 번째 인용문은 `톨스토이 전집 9-중단편선IV`에 실린 `길손과 농부`에 나오는 내용이다.
필자가 4년 동안 주말을 반납하면서 번역한 이 9권에는 `민중 속으로(в народ)` 들어간 후기 톨스토이의 사상이 녹아 있다. 노옹은 황폐한 농촌 현실과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을 병역 의무, 조세 문제와 결부시켜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병들어 이상비대(異常肥大)해진 `러시아 제국`에 대해 반감을 품게 되는 `농민들의 에피소드`를 모아서 실감나게 `제국의 악`을 폭로한다. 이처럼 `길손과 농부`, `시골에서 보낸 사흘` 등은 말년의 톨스토이즘을 오롯이 표현하고 있다.
21세기에 왜 뜬금없이 톨스토이를 불러내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크림반도와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톨스토이를 호명하게 됐다.
`제2의 크림전쟁`을 치른 `푸틴의 러시아`가 `자원의 보고이자 국방의 요충지-북극(해)`에 강한 집착을 드러낸다고 우려하는 이도 있고, `제3제국-러시아`를 지향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품는 이도 생겼다. `제3로마-모스크바`와 `제3인터내셔널-모스크바`를 지나 `제3제국-러시아`라니?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인 미하일 유리예프가 2006년에 쓴 정치소설 `제3제국, 러시아가 가야할 길`은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확히 예측했다고 해서 화제에 올랐다. 이 책에서 `제3제국-러시아`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전체와 그린란드까지 뻗어나간다. 한편 우크라이나 땅의 일부를 러시아 영토로 만들어 `제3제국-러시아의 기반`을 마련한 `제2제국의 차르-블라디미르 2세`를 독자들이 푸틴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도 흥미롭다.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적 사고에 가까웠던 톨스토이가 살아있다면 `러시아적 이념의 왜곡`이라고 할 `제3제국-러시아`에 어떻게 반응할까? 낭만적 민족주의자이며 슬라브주의 전통의 계승자인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적 소명의식의 대용품`이라고 할 `제3제국-러시아`에 또 어떻게 반응할까? `푸틴의 러시아`는 러시아 민중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제3제국-러시아`로 나아가는 디딤돌로 삼기보다는 `노옹-톨스토이`가 주창한 `생명 존중과 반전(反戰)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 지구적 연대의식`과 `지구촌 인간의 역동적 맥락화`로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서로 다른 욕망을 품고 사는 종족들의 공존·공생 해법 찾기에 러시아와 미국·EU도 동참했으면 더 좋겠다.
당장 러시아는 `크림반도 소수민족-타타르족의 자결권문제`나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통일 구상` 실천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 북한을 끌어내 `통일기반 구축`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실현해야만 하는 우리입장에서는 남·북·러 협력 사업(나진·하산 물류사업)에서 러시아가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러시아의 외교정책`에 늘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