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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등록일 2014-03-21 02:01 게재일 2014-03-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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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6·25 사변으로 한국에 미군이 주둔한 후 많은 푸른 눈의 아기들이 태어났다. 생계가 어려운 여성들은 미군들과 살면서 삶을 이어갔기에 미군의 아이들을 출산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환경에서는 그 아이들과 어머니들에게 나쁜 편견을 가지고 홀대하면서 접촉을 꺼려했다. 그 아이들은 우리들과는 떨어져서 외롭게 놀고 있는 것을 자주 봤다. 그 중에는 지금 미국에서 유명한 인사도 더러 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서 우리민족을 두루마기 등 흰옷을 입는 `백의민족`, 또는 순수 혈통으로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여 `단일 민족`임을 강조했다. 학교에서도 그런 식의 교육을 받아서 생활에서 익숙하지 않은 다른 피부나 옷의 색깔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까지는 동서양의 왕래가 없어서 세계 곳곳은 그 곳의 민족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 후에 세계적인 교류가 일어났고 동양에서는 일본이 서양문화를 제일 먼저 받아들였다. 그 후에 청나라에도 외국 문물이 강요된 상태로 밀려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외국과는 문물 교류를 차단하는 최악의 쇄국정책을 취하면서 문을 닫아 버렸다.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를 거쳐서 할 수 없이 문을 조금씩 열어갔다.

근래 한국도 많이 변했다. 동남아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살게 됐다. 어떤 자는 노동자로, 어떤 자는 한국인과 결혼을 해 갑자기 그 수가 늘어났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부르게 됐다.

20세기 중반까지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어느 국가에서나 국경을 열면 처음에는 주저하게 돼 외국인에게 거리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후 왕래자의 수가 많아지면서 정책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지금은 외국을 이웃집에 놀러 가듯이 가서 볼 일을 본다. 21세기는 그야말로 지구 전체가 한 마을이 됐다.

서양의 정책을 보면 캐나다는 1970년대에 `모자이크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민과 원주민의 언어와 문화를 보호해 공존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미국의 시민권을 얻고 난 후에는 이주민 나라의 문화, 언어, 전통 등을 수용하는 소위 `용광로 정책`이라는 다문화 정책을 시행했다. 백호주의로 유명한 호주마저도 지금은 문화의 분리보다도 사회를 통합하는 동화주의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우리 민족이 아닐 때는 본인은 물론 그 자식들도 자기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한국의 구성원 중 한 사람이다. 그들의 자녀들도 나중에 한국을 이끌고 갈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일에는 시민들의 관심과 위로가 필요하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현재 생활이 어렵다. 언어소통과 문화 이해의 애로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의 해결, 자녀 교육 문제의 해소, 취직자리의 알선, 살 집 장만하기 등 여러 가지의 어려움으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때로는 이런 문제로 흩어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제일 좋지 않는 태도는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그것은 고립을 자초한다. 얽히고설킨 사회에서 고립은 죽음이나 다름이 없다. 과거 교육정책에서는 `백의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다가. 근래에는 `다문화 사회`를 강조하는 것 같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교육 정책도 그 시대 상황의 반영인 모양이다.

다문화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로 생각해야 한다. 다르다는 것은 차별과 거부의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새롭다`는 것은 같은 수준에 두고서 긍정하면서 접근할 때 쓰는 단어이다. 지구촌시대에는 준비를 잘 해야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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