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詩人 49명이 고른 자신의 대표작은?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3-14 02:01 게재일 2014-03-14 13면
스크랩버튼
 `영원한 귓속말`  안도현 외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4쪽
문학동네시인선이 50권째를 맞아 펴낸 기념 자선 시집 `영원한 귓속말`은 말 그대로 시인들이 직접 나서서 한데 목소리를 모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영원한 귓속말`은 지금까지 문학동네시인선을 통해 선을 보인 1권부터 49권까지 49명의 시인들이 각자의 시집에서 시인 자신이 이거다 싶은 한 편의 시를 직접 고르게 했고, `시인의 말`과는 별개로 시와 시집에 붙이고 싶은 산문을 덧대었다. 안도현, 허수경, 송재학, 김언희, 조인호, 이홍섭, 정한아, 성미정, 김안, 조동범, 장이지, 윤진화, 천서봉, 김형술, 장석남, 임현정, 김병호, 이은규, 김경후, 최승호, 김륭, 함기석, 이현승, 서대경, 장대송, 김이강, 조말선, 박연준, 신동옥, 이승희, 곽은영, 박준, 박지웅, 김승희, 서상영, 장옥관, 김충규, 오은, 이사라, 윤성학, 박상수, 고형렬, 리산, 손월언, 윤성택, 조영석, 이향, 윤제림, 박태일 시인이 그 주인공.

어떤 이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산문을 쓰기도 했고, 어떤 시인은 일기에서처럼 시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시인은 연륜에 걸맞게 시론을 제시해주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개성이 제각각으로 드러나는 시와 산문을 엮어내어 우리 시의 다양성과 우리 시인들의 폭넓은 상상력을 재미있게 선보이게 된 점이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큰 미덕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자선시 `꾀병`전문

“거짓말 할 때 코를 문지르는 사람이 있다 난생처음 키스를 하고 난 뒤 딸꾹질하는 여학생도 있다 // 비언어적 누설이다 // 겹겹 밀봉해도 새어나오는 김치 냄새처럼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것, 몸이 흘리는 말이다 // 누이가 쑤셔박은 농짝 뒤 어둠, 이사할 때 끌려나온 무명천에 핀 검붉은 꽃//몽정한 아들 팬티를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하는 어머니의 차가운 손등 // 개꼬리는 맹렬히 흔들리고 있다 // 핏물 노을 밭에서 흔들리는 / 수크령 // 대지가 흘러내리는 비언어적 누설이다” -장옥관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 살았다` 자선시 `붉은 꽃` 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문화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