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거리에서` 오쿠다 히데오 지음 민음사 펴냄, 376쪽
일본 아사히신문 연재 당시부터 큰 반향을 부른 이 소설은 세상 어디에나 있는 `중학생의 왕따` 문제를 소재로 했지만, 비극적인 색채를 띠는 일반적인 왕따 소설과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는다.
한여름, 학교에서 벌어진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단순한 사고사나 자살인 줄 알았던 죽음에 잔혹한 학교 폭력이 결부됐을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학교, 유가족, 가해 학생, 경찰, 법조계, 언론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휴대 전화 협박 문자, 소년의 등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 혐의를 부정하는 모범생들, 엇갈리는 아이들의 증언, 가해 학생 부모들의 두 얼굴, 신참 기자와 젊은 검사와 말단 형사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왜곡되고 만들어지는 소문들, 그러나 모든 진실은 소년의 죽음을 지켜본 교정의 은행나무 그늘 속에 침묵할 뿐이다.
매 장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또 다른 가능성, 책을 덮을 때까지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이야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중학교에서 열세 살 학생이 죽음을 맞는다. 2층 높이의 운동부실 지붕에서 학교의 자랑인 커다란 은행나무 그늘 속 도랑에 떨어져 사망한 나구라 유이치.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당황한 어머니의 전화 한 통에 아이를 찾아 나선 교사가 소년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다. 최초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단순한 실족 사고인지 사춘기 소년의 자살인지 아니면 훨씬 무거운 비밀이 숨어 있는 사건인지 수사에 나선 경찰과 학생을 보호하려는 학교의 의견이 갈리면서 한여름의 잊지 못할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유가족, 학교 폭력 주도자로 지목된 자녀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가해자 가족, 끝내 비밀을 밝히지 않으려 애쓰는 중학생들, 전대미문의 스캔들에 당황하는 교사들, 흉악한 소년 범죄를 밝혀내려는 말단 형사, 처음으로 만난 호외 앞에서 기자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신참 기자, 잠을 줄이면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젊은 검사, 그리고 소문을 퍼뜨리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입을 다무는 마을 주민까지. 말없이 죽은 소년의 시신 앞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페이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가운데 어른도 아이도 결국 가장 중요한 이야기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침묵한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열세 살 소년의 죽음.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이러한 주제를 놓고 오쿠다 히데오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를 재어 가면서 숨 가쁘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읽는 재미는 물론, 손에 잡힐 듯이 알기 쉽게 인물 심리를 묘사하여 잘 읽히지만 오래 생각하게 하는 `오쿠다 히데오식 사회파`를 완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와 같은 작품의 힘에 대해 작품 연재지인 아사히 신문에서는 “무거운 테마를 이토록 읽기 쉽게 보여 주는 필치야말로 이 작가만의 독무대일 것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