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규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어제 같은 날
어제가 또 오늘 같고, 시간의
무수한 기적소리가 나를 벗겨가
나는 죽을 기회를 잃어버리고
추하고 추하게 살아남아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술기운 약기운으로 버티며
술이 곧 약이지 어떤 흥분을 불러모아
내 몸에서 터뜨려줄 약을 찾아
방바닥에 술잔을 놓고 쓰러져 잠들 때까지
약을 또 먹고 먹어 나를 쓰러뜨리면
무수한 꿈이 일어나 걸어간다
소리 없이, 소리 지르며
끝까지, 추하게,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내가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평화 속으로
천상병 시인은 우리의 한 생을 잠시 다녀오는 `소풍`에 비유한 바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우리의 인생을 여행자가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평생 어떤 약을 입에 털어넣으면서, 무수한 꿈이 일어났다가 스러져간 것이 결국 우리네 한 생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가슴이 무겁게 젖어있다. 약을 또 먹고 일어나 걸어가며 소리지르며, 혹은 소리없이 비틀거리며 가는 우리가 저만치 선명하게 보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