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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한 욕망, 실천과정 보여줘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2-28 02:01 게재일 2014-02-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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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은희경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8쪽

1995년 데뷔, 등단 20년차인 은희경(55) 작가에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이하 `눈송이`·문학동네)는 그의 다섯번째 소설집이자, 열두 권째 작품집이다. 소설 외에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이 있다. 연재를 하고 계절마다 단편을 쓰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리해 책을 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작가는 그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작품을 쓰고 책을 묶었다. 20년, 작가의 첫 책 `새의 선물`에 열광했던 이들의 딸들이 자라 다시 그의 책을 집어드는 시간이다. `은희경`은 엄마와 딸이 함께 읽는 브랜드 장르다. 어떤 시간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풍경은 늘 그렇게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은 다를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개입된다는 뜻이겠지.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간다. 대체로 헤맸다. 익숙한 시간은 온 적이 없다. 늘 배워왔으나 숙련이 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 탓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낯설어지는 까닭이다. 왜 그럴까. 시간이 작동되는 것이겠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그곳에 닿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고 여겼을 때는 그랬다는 말이다. 지금 이 풍경 앞에서 생각한다. 내가 풍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실려갔다. 떠밀려간 것도 아니고 스침과 흩어짐이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간들이 이 책 속 이야기가 되었다. 쓸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_은희경, 작가의 말

`작가의 말`에서 그는 `시간`과 그 시간이 데려간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떠밀려간 것이 아니라 스침과 흩어짐이 데려”간 그곳에 대해.

이번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 대부분은 압축적이고 단일하며 통일적이라기보다 굉장히 긴 시간, 그러니까 한 인간(혹은 한 집단)의 긴 인생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의 소설들이 한 사람의 생애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사건, 한 순간을 통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압축적이고 통일적으로 그려냈다면 `눈송이`의 소설들은 한 인간의 수많은 굴곡들과 삶의 파노라마들을 냉정하면서도 차분하게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단편소설들이 인생을 결정짓는 지속적인 계기들 혹은 시간을 견뎌낸 자들만이 발견하는 삶의 진실들 같은 것에 굉장히 인색하다면`눈송이`의 소설들은 이례적으로 유한한 인간이 시간의 압력 속에서 자기의 고유한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를 관통하고 지나간 그 시간의 흔적들을 그가 쫓아간 때문일까. `눈송이`에 수록된 여섯 편의 소설들은 느슨하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유사한 인물들과 동일한 공간들이 여러 소설들에서 겹쳐지고, 에피소드와 모티프가 교차한다. 그리고 여섯 편의 소설들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마지막 작품 `금성녀`에 이르면, 그것들이 단지 희미한 유사성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집은, `눈송이 연작`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각각의 단편으로 흩어져 있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연결고리들은 이렇게 함께 모여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홀로 빛나는 듯 보이던 별들이 모여 다시 제각각의 별자리를 이루듯,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면서 하나의 “선”이었던 시간은 “면”을 이뤄나간다.

▲ 은희경 소설가

그 안엔, 우리의 시간들도 함께 엮여들어간다. 당신이 겪어낸 시간은, 곧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기도 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견뎌낸 시간들. 그 시간들은 힘이 세다. 그래서 이렇게 농익은 이야기로, 때론 촘촘하게 때론 느슨하게, 그러나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그의 소설이 단언컨대 한 번도 설익은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집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들은, 곧장 따서 한 입 베어물면 입술을 타고, 팔목을 타고 과즙이 흘러내릴 것 같은 잘 익은 과일과도 같다. 시간과 비와 바람과 햇빛을 견뎌내며 품어안은 향기는 이미 봄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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