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나무의 문장

등록일 2014-02-27 02:01 게재일 2014-02-27 18면
스크랩버튼
정 혜 숙

갈기를 세운 바람이 머물다 가는 7부 능선

비탈에 선 나무의 일대기를 읽는다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은

은사시나무의 백서다

수사는 생략했다 간결하지만 깊은 문장

꽃으로 잎으로 차마 못했던 말들을

수피에 음각으로 새겨

이다지 간곡하다

나무 앞에서 부끄럽다

농담처럼 보낸 시간들

어깨를 툭 치고 가는 가랑잎마저 아프다

잘 벼린 문장 한 줄은

끝내 나를 비껴 갔다

자연은 그냥 구경하고 관조하는 대상만은 아니다. 자연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자기의 문장을 써 내리고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는 의미없이 피어나고 스러져가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자연의 문법에 따라 저마다 최선의 문장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인간의 문장으로 흉내조차 낼 수 있단 말인가.

<시인>

김만수의 열린 시세상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