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두 남녀 간의 사랑을 우리는 애정, 또는 에로스라고 부른다. 이는 그들 둘만의 문제로서 서로만을 좋아한다. 에로스는 자기 몸이 상대에게 포박당하여 스스로가 그의 소유로 되기를 자원한다. 또 다른 이성에게 에로스를 갖는 것에 관심이 없어진다.
애정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공개될 수 없는 공간이 형성된다. 두 사람 사이에만 사용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버린다. 만일 내가 이성(異性) 2명과 동시에 애정을 쏟는다면 나를`애정을 줄줄 흘리는 사람` 또는 `저급한 인간`으로 매도하면서 나와의 애정을 실망해 버릴 것이다.
연애란 애정 관리의 초기 단계이다. 애정에서 최후의 목표는 자식을 갖는 것이다. 성욕이 개입한다. 처음에는 살짝 머리를 들어 밀다가 애정이 익어갈수록 성관계 갖기를 점점 더 바란다. 성욕은 지구를 끌고 가는 기본 힘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사춘기의 넘치는 열정은`나의 몸이 자식을 만들어 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육체의 호소이다. 원초적인 본능의 소산이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마음에 결심을 하면 결혼한다. 결혼은 `내가 상대의 몸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생명을 나의 후손으로 하겠다`는 것을 각오할 때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부모들 앞에서 맹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식을 낳는다. 남녀가 자식을 낳을 수 있을 조건이 이루어 져야만 임신이 가능한 부부관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처녀 총각 시절에는 결혼이란 세상살이를`스피드를 즐기면서 달리는 드라이브`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혼 후 살아가는 과정은 녹녹치 않다. 온통 자갈밭이고 때로는 큰물이 일어나서 길이 푹 파이기도 한다. 또는 결혼을 항해에 비견하기도 한다. 둘은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에 노를 저어 떠나려고 무서움 없이 도전한다. 비바람이 치는 바다를 둘이서 노 하나에 의지하여 용기 있게 나아간다. 그러는 중에 서로는 방향에 대해 많이 다투기도 한다.
결혼 생활은 행복을 느끼는 중에도 수많은 갈등과 희열, 고통과 기쁨, 믿음과 의심을 양산하면서 지루하게 지속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삶의 내용은 어려움과 사랑, 오해와 용서가 서서히 섞이고 농축되면서 푸른 과일이 노랗게 변하듯 점차 생활이 익어간다.
그럭저럭 인생은 흘러가고 자식은 사춘기를 거친다. 그 후 흐르는 세월은 손자를 보게 하고 분가한 자식에게서 좋지 않는 소식이 가끔 들려오곤 한다. 가슴이 철렁거리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자식의 전화를 받는다.
평범한 부부에게는 처음에 가졌던 에로스가 어느새 날아가 버리고 덤덤하게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가 문제가 일어나면 언제나 상의하기 위해 `여보~!`를 점점 더 많이 찾게 된다. 이때쯤에야 비로소 또 다른 사랑의 씨가 맺힌다. 둘만의 사랑에서 관심의 폭이 더 넓어진다. 예리함보다는 감싸 안는 자세로 이웃의 문제에도 점차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사랑을 아가페라고 한다. 이제는 부부가 서로를 아끼게 된다.
살면서 `사랑을 확대하느냐, 또는 못하느냐?` 하는 것은`그의 결혼 생활의 결과가 어떠하냐?`하는 것에 달려 있다. 조금이라도 확대할 수 있다면 그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한 것이다. 일반 사람이 에로스에서 아가페로 가는 과정은 이렇게도 긴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 성공적인 에로스는 늦게라도 아가페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미혼모가 불어나고 있다.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때만 해도 출산은 결혼과 동일하게 취급하였으나 지금의 풍속은 성교란 기쁨을 표현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하기야 의술의 발달로 인체 문제의 대부분은 처리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