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나타난 8도의 인심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영남인들의 인성적 특징은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하지만 의(義)를 중요시하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남 안에서도 부산·경남인들은 비교적 사근사근한 편이니 대구·경북인들이 영남적 기질의 원형에 더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포항, 경주, 영덕, 울진 등 동해안 사람은 성격이 시원시원하나 급한 편이며, 내륙인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진중해 해륙(海陸)의 상반된 풍토적 기질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대구사람들은 분지의 지형 만큼이나 보수적이며, 심지어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아마 여기에는 경상감영을 둔 대구를 도회지로 보는 여타 영남인들의 부러움과 시기도 뒤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 안에서 도시 성장세의 정체 위기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면서 부정적 폐쇄성에 대한 자성론이 일기도 했다. 아마 그 담론의 정점을 굳이 꼽는다면 홍철 대구가톨릭대 총장의 고언(苦言)을 들 수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장으로 고향에 돌아온 홍 총장은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대구의 유지들 앞에서 고언을 쏟아냈다. 핵심은 `밀라노 프로젝트를 비롯해 영호남을 망라한 역대 정권이 대구에 굵직굵직한 성장동력을 제공했지만 민관학이 모두 과거의 영광을 과신해 안일하게 대처한 결과 하는 일마다 꼬였다`는 것이다. 작심한 대경연구원은 아예 단행본 `이제 대구를 말해줘`를 발간해 대구는 물론 다른 시군에까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대사를 힘겹게 넘어오며 중앙의 모순이 투영된 지역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는 자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이웃도시 포항에서 발간된 책이 `포항, 이제 어떻게?`이다. 홍철 총장이 포항의 작가와 학자 등 세 사람과 함께 진행한 오랜 연찬의 결과인 이 책도 철강도시로 번영을 이룬 포항의 그늘에 도사린 문제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데 맞춰졌다. 요약하자면 `포항이 철강산업 일변도에 머물러 민관이 머리를 맞대어 차세대 성장산업을 미리 갖추지 않으면 한국의 피츠버그가 될 것이며, 도심공동화와 오염된 동빈내항으로 상징되는 도시환경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포항이 경북 제1의 도시라는 위상에 우쭐해 울산, 경주, 영덕 등 인근 지역과 민간 교류 등의 차원에서 협력하지 않으면 고립되며, 지자체간 역내 공동발전의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경고도 빠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인접한 두 도시의 현실과 고민, 해법을 담은 자기 지역 성찰의 결과는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대구는 경기 침체와 각종 사고라는 잇단 대재앙이 엄습한 위기감 속에서 상당한 반향의 양만큼 일정한 성과도 있었으니 그 상징은 세계육상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시킨 일이다. 또 영호남의 벽을 넘기 위한 시도는 달구벌 대구의 `달`, 빛고을 광주의 `빛`을 조어한 `달빛동맹`을 성사시켜 민간과 지자체간 교류를 넘어 경제협력의 지평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포항은 달랐다. 당시의 위기론은 지역에서 그리 많은 동조자를 모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포스코는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으로 오늘의 위기에 이르렀으며, 포항 경제에 대한 걱정도 확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부권 도청 시대가 임박해 있는데도 경북도지사와 포항시장의 정치 역학은 도내 유권자의 36%가 거주하는 동남권의 제2 도청사 염원을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 스스로도 힘을 모아야 난제를 풀어가겠지만 포항과 경주, 영덕과 울진을 협력케 할 수 있는 개방성과 리더십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소통과 통섭의 담론, 그 갈망은 인간과 사회, 지구와 자본주의에 대한 위기감과 성찰의 결과에서 비롯됐다. 대구가 현실 타개를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듯이 포항도 해양의 관문이라는 개방성을 회복·확대해야 한다. 대구와 포항, 경북이 서로 더 협력하면 `교토-마이즈루항`의 개명(改名)사례처럼 `대구-영일만항`의 시대로 상징되는 발전의 계기도 앞당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