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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대한 대처법

등록일 2014-01-24 02:01 게재일 2014-01-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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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누구나 죽기를 싫어한다. 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무섭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으면 육체와 체온은 사라져서 영원으로 옮겨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인지 끝모를 터널인지 얼마나 깊은지를 모르는 미지의 곳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 예수가 살리셔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는 한 번 죽어보아서 무서웠는데 또다시 죽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까 그 후로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는 농담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 간에 질병이나 간혹 암과 동거하면서 살아가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다. 똑같은 `오늘`이라도 혹자에게는 태어나는 생일이 되고 누구에게는 결혼식을 올리는 기쁜 날임인 동시에 어떤 이에게는 재수 없는 장례 일자가 된다.

장수 시대인 근래에는 사람들의 1/3은 암을 앓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느 의과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죽음을 이기는 삶과 죽음에 지는 삶`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죽음에 굴복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삶을 살도록 호소했다.

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암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미국의 엠디엔더슨 병원은 550개 병상에 연간 6천억원을 투자하고 1천600여명의 자원 봉사자와 1만8천700명의 직원이 일하면서 치료와 연구에 매진한단다.

암은 퍼지기 전에 들어내는 것 이외에는 진행을 멈추지 않기에 완치란 없다. 단지 진행을 억제시킬 뿐이다. 암세포는 몸의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여건이 되는 곳에서 증식을 하게 된다. 암 조직 1제곱센티미터에는 1조개의 암 유발체가 있단다.

암이 조금 호전되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겸손한 사람, 믿음이 깊은 자, 반드시 살아서 할 일이 있는 자들이란다. 또 치료 효과가 비교적 좋은 자는 지방에서 사는 자, 시골인, 적게 배운 사람들이라고 한다.

대성통곡을 하는 자들이나 `앞으로 얼마쯤 살까?`를 걱정하는 자는 일찍 죽는단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생각하는 자는 잘 견뎌 나간단다. 안 죽으려 악쓰는 자, 슬픔이나 공포에 사로잡힌 자 등은 치료가 잘 되지 않는단다. 이때는 암 대신에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이면서 생애를 뒤돌아보게 되면 삶의 질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다고 했다.

치료 과정에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것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암세포를 죽일 수 있단다. 일반인 보다는 전문음악가나 성가대원에게서 면역세포 수치가 200배~1천배 높았단다. 찬양대원이 합창하면 입 안에 병과 싸우는 면역 단백질이 240% 증가했단다. 또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환자의 통증이 줄어든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는 우리가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암 등으로 허약해져 있을 때야말로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가 된단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은`절망`이라고 했다. 소망이 없는 절망의 결과는 죽음뿐이란다. 그러나 신앙이란 `죽음은 절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즉 죽음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것이 종교이다.

철학은 `참(眞)과 거짓`이란 뭔가를 묻는 것이다. 도덕은 선(善)과 악의 문제이다. 무엇을 실천했느냐의 문제이다. 그럼 신앙이란 뭔가? `생과 사(生死)의 문제`이다. 종교는 죽음을 속죄한 후 신의 나라로 가는 끝이 아닌 하나의 매듭으로 본다. 암은 죽음과 관계를 가짐으로 신의 영역이고 신비하다고 일부 과학자는 주장한다.

죽음을 의식해온 사려 깊은 자는 말기가 되면 현실을 받아들여서 치료에만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자식들에게 부탁한다. 잡다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 죽음에 삼켜지는 내가 아니라 죽음을 긍정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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