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초 포항철강공단내 모 철강업체 사장 A모씨로부터 불쑥 전화가 걸려왔다. “김 기자님, 저 회사 관뒀어요…(잠시 침묵) 그동안 전화 못드려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A사장은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이 회사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지난해 11월 중순께 그는 “김기자님, 연말 가기전에 꼭 소주 한잔 합시다”라고 전화까지 했었다. 전화를 기다리다 못해 한달 후인 지난해 12월 중순께 A사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멘트만 나왔을 뿐 그의 목소리를 한동안 들을 수 없었다.
왜 갑자기 그만 뒀을까? 온갖 추측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지난해 8월 이 회사의 노사분규가 한창 진행될 때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조 간부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 타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몸바쳐 일했던 직장을 대체 그만 둘 이유는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회사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정년이 다 돼서 그만 뒀겠죠…”라면서 핑계아닌 핑계를 댄다.
지난주 몇 차례 시도 끝에 A사장과 간신히 통화를 했다. “아니 갑자기 왜 그만 뒀어요, 이유라도…”. “……김 기자님, 조만간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편안하게 얘기합시다”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과연 그의 말처럼 편안하게 소주 한잔 하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포항철강공단 업체 임원들은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안(환경, 노동, 안전 등)과 관련해 직접적인 연대 책임을 지게 된다. 또 1~3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사주가 해고명령(?)을 내리면 당장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들을 일컬어 이른바 `파리목숨`이라고도 부른다.
지난 몇년동안 철강공단 업체의 H·J상무, L·K이사, J전무, H사장 등이 그렇게 회사를 훌쩍 떠났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임원들이 정든 직장을 떠나게 될까?
철강공단내 모 업체의 J부장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그나마 부장으로 있을 때가 그래도 제일 좋은 땝니다. 이사나, 상무로 승진하는 그날부터 보따리 쌀 날만 기다려야 합니다”
김명득
기자 /mdkim@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