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새 해가 밝았다. 푸른 말의 힘찬 기운이 오늘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모두가 힘들다고 말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에 넉넉함이 메마르고 광야 사막 길에 먼지와도 같은 온갖 불평과 원망의 넋두리가 삶의 옷이 된다.
전국 방방곡곡 말씀 사역으로 헌신하면서 느껴지는 아픔 가운데 하나가 힘들어도 아파도 성도들이 성전에 올라오면 어머니 품 같은 따뜻함에 몸도 마음도 피곤에 지친 삶도 평안과 쉼을 경험하면서 희망과 생명의 힘을 입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교회마저도 사랑에 젖어드는 눈이 아니라 퀭하니 메말라버린 눈빛에 겨울 바닷물처럼 차가운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조용필 선생님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겨울 바닷가 바위를 후려치고 스스로의 몸을 하얗게 부셔버리는 파도처럼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이 겨울 바닷물처럼 차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말들을 쉽게 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좀 더 이해 하고 사랑하며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없을까 생각해 본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예배당 마당 구석에서 목사를 기다리는 분이 계신다.
어느 한 주일도 예외가 없다. 내가 현관에 나타나면 한걸음으로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지갑에서 만원을 그분의 손에 쥐어드리고 어깨를 한 번 감싸 두드려주고 “밥 잘 잡숫고, 똥 잘 누시고, 아셨지요?”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 지면서 쏜살같이 돌아가신다. 어느날 지갑이 비어 있었다. 낭패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목사는 그냥 인사만 하고 천연스럽게 모른척 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말 없이 차를 몰고 떠나는 목사를 몇 번 돌아보며 예배당을 떠나는 그 분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 한 주간은 불편스럽기 그지없이 보냈다. “어이구 이놈의 목사야, 빌려서라도 드려야지. 한 주간동안 얼마나 널 보고 싶어 했겠니?” 스스로 자책하면서 마음이 천근만근이 되어 한 주간을 보냈다. 괜스레 스스로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나고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후에는 누구에게라도 빌려서 꼭 1만원을 그분의 손에 쥐어 드렸다. 목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 분, 손에 만원을 쥐어 드리면 금방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천진스럽게 어린아이처럼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은 수 천 만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애, 순수함 그것이다. 나는 주일마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난다. 말 한마디 없는 그 분은 수천 만 마디를 눈빛과 얼굴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던 그 분이 어느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혹시 싶어 차 안에서 잠간 기다려 보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편찮으신가?” “혹시?” 그러다가 다음 주일에 나타난 그 분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었다. “아픈데 없지? 괜찮지요?” 그러면서 그 날은 2만원을 손에 쥐어 드렸다. 목사는 그렇게 주일만 되면 1만원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그 분은 오늘의 예수님이다. 그래서 그 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한 걸음에 달려올 때 나는 주님을 보듯 반기고, 그것이 매 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됐고, 나도 매 주일 그분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보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그러다가 다시 오시는 그 분을 만나고 싶다.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