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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Talent)

등록일 2013-12-18 02:01 게재일 2013-12-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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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 교수·임상병리학과

지난달 28일 밤 10시쯤 부평 철도 경찰센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노숙자가 들어와서 “저…. 19억 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어요.”라며 지갑분실 신고를 했다. 행색이 허름한 노숙자가 19억원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주장, 그리고 그렇게 많은 금액이 지갑 안에 들어간다는 사실 모두를 믿을 수 없었던 경찰은 노숙자를 계속 추궁했다. 하지만 조사결과 노숙자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었다. 이에 경찰은 은행의 협조를 받아 당장 1억원짜리 수표 19장을 모두 지급정지시켰다.

이어진 노숙자의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19억원을 분실했다는 노숙자는 바로, 과거 신문에 보도된 바 있는 `50억원 재벌 노숙자`였던 것이다. 충남 논산 출신의 이 노숙자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토지 보상금 50억 원 정도를 은행에 넣어둔 채 이자로만 매월 1천만원이 넘는 돈을 받으며 노숙을 해온 속칭 `재벌 노숙자`였던 것이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집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절 부모로부터 이보다 많은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고 한때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변변한 직업 없이 지내다 2010년 초부터 노숙하기 시작해 인천, 서울, 천안 등을 전전하고 있다. 그가 노숙을 하는 이유는 호텔이나 모텔 등에서 잠을 자면 감옥 생활 같고 답답하지만 노숙을 한 번 해보니 심신이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도 노숙자 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경에 보면 달란트(Talent)의 비유가 나온다. 먼 길을 떠나는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다. 1달란트는 6천데나리온 정도이다. 당시 1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었는데, 오늘날의 하루 일당을 5만원이라고 친다면 주인으로부터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약 3억원, 5달란트를 받은 종은 15억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을 맡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 언급한 노숙자는 부모로부터 20달란트가 넘는 엄청난 재물을 물려받은 것과 같다.

신(神)께서는 우리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달란트를 맡기셨다. 각자의 능력과 역량에 따라 다른 내용의 달란트를 맡기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달란트를 부러워하지 말고, 또한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대한 우월감도 그리고 열등감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묵묵히 성실히 감당하는 삶이 책임있는 삶이다. 책임은 영어로 Responsibility이다. Responsibility란 단어는 Response란 단어와 Ability란 단어의 합성어이다. Response는 어떤 자극에 `반응한다`는 뜻이고, Ability는 `능력`이란 뜻이다. 그래서 두 단어를 합하면 `반응하는 능력`이란 뜻이 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다보면, 가장 힘이 나고 행복할 때가 바로 제자들이 수업시간에 나의 강의와 질문에 대하여 생동감 넘치게 반응할 때이다. 앞자리에 앉아서 지난 시간에 강의한 내용을 잊지 않고, 질문 하나하나에 열심히 반응하고 대답하는 학생들의 responsibility를 접하게 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줘야 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끓어오른다. 전공 과목 수강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학생들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지식(Knowledge)의 달란트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서로 자신에게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투표란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지닌 최고의 달란트이다. 상식에 어긋난 장외투쟁, 촛불선동, 삭발, 거짓 언론플레이를 앞세우는 후보와 정당은 결코 국민들로부터 달란트를 받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품격과 책임있는 신뢰를 보이는 후보와 정당이야말로 국민들로부터 5달란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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