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해 오던 봉사활동을 금년 여름에는 몽골에서 하기로 하였다. 20여 년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여 왔지만 해가 지날수록 더 진한 강도로 봉사를 해 온 것 같다. 그래서 활동을 마칠 때면 항상, 전 해보다는 더 열심히 일한 것 같아서 늘 가슴 뿌듯한 느낌을 갖는다.
이번에 행한 활동은 자비 부담이었다. 그 기간 동안 일행은 물이 부족하여 목욕도 하지 못하고 마룻바닥에서 잠을 잤으며, 수면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나 모두는 매일 서로를 위로하고 웃음꽃을 피웠다.
이런 봉사는 나누는 기쁨을 잘 아는 자가 되어야 할 수 있다. 기쁨 중에서 제일 크고 가치 있는 기쁨은 봉사활동으로 약자나 이웃과 함께 하는 기쁨이다. 반대로 좋지 않은 기쁨은 나를 꾸미거나 치장할 때의 기쁨이다. 자기만의 기쁨이다. 제일 가치 없는 기쁨은 소유의 기쁨이다. 소유욕에서 모든 악한 행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진료하다가 들판을 내다보면 거기에는 흰색의 덩이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양떼들이다. 그놈들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에 목자가 끌고 다닌다. 양은 죽으면 살코기는 음식으로, 가죽은 옷으로 주인에게 봉사한다. 순하고 모두 주어버리기에 양을 천사로 비유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이번 기회에는 목장에서 양을 잡는 것을 보는 귀중한 경험도 했다. 양은 주인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는데 주인이 가슴에 세로로 10cm 정도의 칼질로 피부와 근육을 절개 했다. 양은 꿈틀거린 후 잠잠해 졌다. 주인은 상처부분을 통하여 가슴 깊이 손을 넣어 급소를 눌러서 단번에 죽였다. 저항이나 끙끙거리지 않고 양은 움칫하면서 눈을 크게 뜬 채 목숨을 잃었다. 저 세상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난 것이다.
모두는 성경에 쓰여 있는 인간을 대신하는 양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한 사람이 “우리, 저 양의 고기를 먹을까 말까?”라고 조용함을 깨트리니 모두는 숙연히 “양고기를 씹어보면서 생명이란 뭔가를 생각하겠다”고 하였다. 양의 죽음 앞에서 생명에 대한 경건함과 영원 등 고차원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기서 일행들은 무한과 신비를 향한 열기로 후끈거렸다. 서늘한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들은 들판으로 나가서 반짝반짝 손짓하는 수많은 별을 보고 합창하면서, 우리의 미래와 각자의 행복을 생각하였다. 별들은 우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삼라만상과의 대화를 우리들은 `이룰 수는 없어도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지평선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하늘은 우리에게 “인간의 행위는 모두 용서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無所不容). 또 광활한 지평선은 우리에게 “땅위에는 뭣이든 놓아둘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無所不載). 땅은 필요한 것만 선택해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다. 더러운 오물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양을 잡던 숙연한 그날 밤에 컴컴한 평야의 바람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제까지 세상을 더럽히고 얼룩지게 한 것을 용서받으세요. 인간 마음의 선한 부분을 살려보세요. 짐승들과도 나눌 수 있는 사랑과 자비로 지구를 구출하세요` 등을 밤늦게까지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아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왔다. 지평선이 보이는 것만 다를 뿐, 해의 밝기와 시간의 논리는 한국이나 몽골에는 차이가 없었다. 세상의 원리는 끝없는 광야나 대도시의 빌딩 숲에서나 어디서든 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