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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발전과 분노

등록일 2013-11-08 02:01 게재일 2013-11-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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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수필가·경주청하요양병원장

분노란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대상이나 사람이 그 정도의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낮게 평가됐을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하나이다. 분노의 강도는 당하는 것에 기울였던 관심이나 정성의 크기 정도에 비례한다. 이런 상처를 받으면 그는 자기가 무시됐다고 생각한다. 분노는 격한 감정으로서 건설적일수도 때로는 파괴적일 수도 있다.

분노는 사람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사랑을 차단시키지만 사랑의 화신인 예수도 명절에 성전에서 장사치들이 판매에만 열중할 때 판매대를 밀어내면서 분노했다. 이와 같이 분노와 사랑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식에게 잘못을 훈계할 때와 같이 인생관 설립에 필요한 사랑의 분노 등은 관계의 안정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분노는 통제될 수 있다. 조절된 분노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현재를 안정시켜서 이후의 상황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 반면 절제되지 못하면 탓할 상대를 찾기에 고심한다.

분노란 어느 개인이나 사람에게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그 지역의 모순된 일들이나 조국의 현실에서 부조리한 상황을, 꿈이 더 큰 사람은 세상에서 정의의 부족을 분노하기도 하고,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변영로는 시 `논개`에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공자는 개인이나 단체의 억울함이나 원망을 해결하지 못하면 정의가 훼손되고 분노가 움튼다고 했다. 권력자의 자기중심주의는 국가에서 정의가 말살됨으로 분노의 대상으로 보았다. 국가는 모자라서 조금씩만 나눌 수밖에 없더라도 고르게는 분배되어야 한다고 했다.

독과점 등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조직이 흔들린다고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분노하여 왕을 쫓아내는 것까지도 자연권으로서 정당하다고 했다.

분노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여 분노는 어떤 면으로든 건강치 못한 폭력과 증오를 가져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분노 자체만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분노를 절제해야 한다.

분노는 하나의 명백한 이유와 선을 향한 의도의 방향성을 가지며 사람들이 그 정당성을 잘 이해해야 가치가 있다. 이럴 때 분노는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고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현실의 좌절에서 적극적인 관여로 나오게 한다. 이럴 때 간디의 `비폭력` 행사가 정치적으로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는데 좋은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분노의 실행은 상황이 충분히 진전돼 있는 적절한 시간에 행하는 것이 좋다.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 용감한 사람에게 전달돼야 행정과 분배 등 경제 문제, 의료 및 복지 정책 등 사회의 각 분야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역사는 비록 느리지만 근본적으로 개혁되면서 발전한다. 사회의 여러 분야는 서로 연결돼 있기에, 시민들의 마음과 관습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역사는 진보해 나아간다.

`철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새 시대에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이후의 지구는 어떻게 변하여 있을지 나는 생각할수록 흥미로움을 느낀다. 새로운 시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지식, 새로운 전망이나 사상 등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간다. 이 길에서 나 자신부터 점차 탈바꿈을 하여 그것을 거대한 하나로 통합된 변혁의 대로로 연결시켜야 한다.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에서 분노는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단계이다. 그 후에는 열정을 가지고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다. 이때 그에게는 지금과는 변화된 미래를 전망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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