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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안에서 발견하는 `우리`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3-10-11 02:01 게재일 2013-10-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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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이 크레인`  조영석 지음  문학동네 펴냄, 112쪽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면서 시단에 나온 조영석 시인의 두번째 시집 `토이 크레인`(문학동네)이 출간됐다.

첫 시집 이후 7년 만에 펴내는 시집이라 더욱 기대를 모은다.

2004년 당시 등단 심사평에서, “참신한 상상력이 가벼운 재치나 산만한 진술로 추락하지 않고 미적인 합리성을 가진 구조를 얻고 있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시인은 2006년 출간한 첫 시집 `선명한 유령`을 통해 동시대 몇몇 시인들이 보여줬던 난해함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드러냄으로써 그의 시적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줬다. 시인은 그 첫 시집에서 우리의 삶의 현장을 정글로 바라보며, “육식성”의 사회 속에서 “초식”의 삶을 꿈꾸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속적 현실과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일상잡사의 이면에 감춰진 전혀 평범하지 않은 비밀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형안은 이번 시집에도 그대로 이어져 다시 한번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고요한 밤

무거운 밤

당신의 머리 무게를 재는

나의 팔이 잠들지 못하는 밤

고된 하루의 노동이

꽁꽁 얼어 있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

파르르 떨리는 당신의 목이 안쓰러워

생침을 삼키는 당신의 침묵에

내 혀는 그동안 배운 모든 말을 잃어버리고

살며시 당신 이마에 손을 얹을 뿐

내 핏속으로 점점 침몰하는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며

나도 그대의 머릿속에서

멀고먼 아침까지 숨을 참는다

고요한 밤 무거운 밤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두 사람의 줄기찬 불면(不眠).”

-`부부`전문

시적 자아는 가족이라는 땅에서 뿌리를 거둬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새롭게 뿌리를 내리며 `우리`라는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 시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고된 하루 노동”으로 “파르르 떨리는 당신의 목”과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며” “멀고먼 아침까지 숨을 참는” `나`의 모습이다.

뿌리를 옮겨도 남루한 현실은 다를 바 없다는 비극의 확인. 하지만 말을 잃고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말이 아닌/ 이 세상 모든 것으로 노래하”(`순례자 2`)게 될 수 있음을 시인은 동시에 알게 된 것이 아닐까.

그가 새로이 내리려는 뿌리가 닿아 있는 곳은 바로 `시`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에게는 `시`가 곧 `우리`이리라. 때문에 그 `시` 안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이토록 남루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이 노래를 읽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즉 “당신의 머릿속 비린 하루를 느끼”는 일, 당신과 세계의 비림이 실은 `나`의 것이기도 함을 절감하는 일, 그렇게 세계에 대해 `나`의 입장을 세워가는 일을 하는 것이겠다.

-이재원(문학평론가)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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