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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철강공단의 우울한 추석

등록일 2013-09-13 02:01 게재일 2013-09-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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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 편집부국장

“추석이 다가오지만 명절기분이 영 안 납니다. 고향 갈 생각도 없고요….”

포항철강공단 내 모 업체 근로자 최모(43)씨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철강경기 침체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예전 같으면 잔업에 야간수당, 그리고 명절마다 두둑하게 주는 보너스 때문에 살판났는데, 요즘엔 기껏해야 고향 갈 차비 정도(30만원) 밖에 안준다고 투덜댄다. 강원도 태백이 고향인 최 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을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포항철강관리공단이 올 추석을 앞두고 공단 내 90개 업체를 대상으로 상여금 지급현황을 조사한 결과, 58개사가 2만~30만원 미만의 선물만 지급한다고 한다. 50%이하의 상여금이나 20만~80만원의 격려금을 주는 업체는 32개사, 상여금 100%를 주는 업체는 14곳뿐이다.

6~7년전만 하더라도 상여금 200~300%에 특별보너스까지 얹어주는 업체가 수두룩했다. 그러던 것이 불과 2~3년전부터 철강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상여금을 주는 업체가 크게 줄어들고 10만원 미만의 선물로 떼우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죽겠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은 자동차관련 업종이나 강관업체는 정상적인 상여금에 푸짐한 선물도 마련했다. 요즘 공단에서 잘 나가는 S사의 한 직원은 “어려울 때 받아보는 상여금과 선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맙게 느껴진다”며 “상여금이 없는 다른 회사 친구들을 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건설과 조선경기 침체로 아예 판매망마저 끊겨버린 후판업체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J사의 김모 부사장은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직원들에게 주는 추석 상여금을 안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고향 갈 때 부모님께 드릴 선물 값은 줘야지….”라며 한숨 지었다.

IMF외환위기를 극복했던 포항철강공단이 이번에는 무척 힘겨워하고 있다. 세계 철강경기가 너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공단 내 270여개 업체 가운데 영업이익을 내는 업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경영사정이 어려운 일부 업체는 구조조정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공단업체마다 생존전략을 짜놓고 하루종일 비상대책회의다. 수출과 판매량이 줄다보니 재고량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그렇다고 근로자들을 놀릴 수도 없고,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생존문제가 요즘 화두다. 지난주 만난 J업체 모 임원은 건설, 조선경기 침체로 제품판매량이 절반이상 줄었다고 한다. 사장 이하 임원들은 매일 아침 비상회의다. 그렇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장보기 민망해서 발버둥치는 흉내라도 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H사 모 이사도 요즘 바늘방석이다. 재고량이 쌓여 일부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추석 이후가 더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자금사정이 괜찮은 대기업들이야 어떡하든 이 위기를 버텨내겠지만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이 문제다. 사실상 존폐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철강공단 내 상당수 업체가 업종전환을 서두르고 있거나 아예 공장 문을 닫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업체도 있다.

추석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포항철강공단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다. 공단업체 가운데 76%가 이번 추석에 가동을 중단하고 쉬기로 했다. 그 만큼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다. 상여금을 두둑하게 받아 고향가는 이들은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워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찡그린 얼굴로 고향에 갈 수는 없잖은가. 고향가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웃으면서 가자. 즐거운 귀향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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