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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먼저다

등록일 2013-08-28 00:21 게재일 2013-08-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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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 교수·임상병리학과

중국 제약회사의 초청으로 며칠간 중국에 다녀오게 되었다. 필자가 방문한 도시는 심양(瀋陽), 사평(四平) 그리고 본계(本溪) 이렇게 3개의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다. 고속도로 좌우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짙푸른 하늘, 그리고 옛 고구려의 땅이어서 그런지 산과 들에 자란 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 등등은 지금 한반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그 모양새가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다. 방문하는 곳 마다 멀리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중국 전통주와 푸짐한 식사를 매 끼니 대접 받았다.

그런데 중국 현지인들의 환영사를 할 때 마다 절대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은 “어떤 일의 성과를 내기 보다 우선적으로 돈독한 관계(關係)를 먼저 만들어 가자” 였다. 이들이 환영사로 위와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배경이 뭘까? 그것은 바로 상호주의적 관계를 바로 보는 관점이 한국인과 중국인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빨리 빨리 정서가, 양자간의 관계 성립보다 우선된다. 즉, 성과가 일의 성패를 결정짓는 척도이며 상호간의 관계 형성의 정도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비즈니스나 상호 협력 관계에 있다가도, 거래가 끝나면 완전 남남이 되거나 심지어 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중국인은 `관계`를 `관시`라고 부르며 일상생활은 물론 경제 활동의 작동원리로 삼는다. 그러다보니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일단 이해관계가 걸리면 보호할 사람의 범위를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간에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중국에서 큰 공장을 운영하다가 야반도주(夜半逃走)를 해야 했던 어느 기업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십여년 전 중국에서 신발공장을 설립한 그는 낮은 임금과 세제 혜택 덕분에 사업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 게다가 몇몇 중국 본토 지방 정부 관리들이 베푸는 호의와 친절은 평생지기의 우정 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임금상승과 세제개편, 그리고 수출부진이 겹치며 공장이 어려워지자 믿었던 중국 관리들이 먼저 그에게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물론 공장이 어려워진 것은 1차적으로 사업 환경의 변화를 회사의 대표자인 사장이 미리 포착하지 못한 불찰이 크다. 하지만 10여년 가까이 피와 땀으로 멀리 타향에서 이룩한 사업장을 뒤로하고, 맨몸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적절한 `관시`의 설정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 기업가가 중국에서의 `관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좀 더 내실 있는 관계를 맺었더라면 최소한 반전의 기회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른다.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관시`의 조율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중국에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수한 시스템 때문이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관시`를 통해 사업과 연관된 `시스템`을 파고들지 못하면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은 결코 보장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국에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핵심인사(Key Man) 파악을 잘 해야한다. 자주 자리가 바뀌는 최고위보다는 중간 간부 중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핵심인사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리고 중국과 연관된 모든 일에 대하여 긴 호흡을 갖고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빨리 빨리 문화가 익숙한 한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요구사항이다. 하지만, 좋든 싫든 중국은 순식간에 G2의 한 축으로 미국과 어깨를 겨루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그러한 중국과 지정학 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매우 가깝다. 이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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