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되지 않은 세계와 국가를 유산으로 상속받기를 바라며 `불평등의 대가`를 쓴 이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라는 경제학자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세계은행 수석 부총재로 근무할 당시에는 자신이 속한 세계은행의 정책이 후진국의 빈곤과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고 비판하다가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자리에서 물러나기까지 한 인물이다. 스티글리츠는 이 책에서 `이토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은 사회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상황인 `세(稅)국열차의 가운데 칸의 불만과 꼬리 칸의 더 테러 라이브`와 관련해서 필자의 눈에 쏙 들어오는 부분은 불평등이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치과정을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훼손시킨다고 밝혀 놓은 장(章)들이다. 불평등의 대가인 빈부 격차는 실제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빈부 격차는 `교육 기회의 격차`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사회계층 간의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게 만든다. 특히 필자가 우려하는 건 교육의 `승자 독식 구조`가 사회 동력을 약화시키면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이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볼수록 섬뜩한 건 억울하게 죽은 노동자를 아버지로 둔 아들의 분노와 함께 엿보이는 `아들의 고착돼 버린 신분`이다. 그리고 방송과 공권력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행태`다. 결코 테러를 정당화해 계급전쟁을 벌이자는 게 아니다. `사회적 결속`, `국민대통합`으로 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지금부터라도 도출해보고 `사회계층 간의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는 시스템을 개선해보자는 거다. 그래서 중산층의 공동화를 막고 중산층에서 빈곤층, 소외계층으로 추락한 이들을 적극 보듬어 보자는 거다.
대통령의 8·15 경축사와 관련해 한 신문의 기사를 보면 대통령이 임기 첫 해 `통일`을 `국정 제1 어젠다`로 내세웠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경제·복지·문화 등 내치(內治)에서의 성공이 곧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다른 신문의 기사는 대통령이 정치 현안에 `침묵`하면서 `새로운 국정 화두`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중산층과 서민들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통일 어젠다로 정치·경제 어젠다의 현안을 희석시키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계층 간의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는 시스템을 개선하고 중산층에서 빈곤층, 소외계층으로 추락한 이들을 보듬어 주는 노력이 안 보인다고 여기는 것 같다. `증세(增稅)` 문제로 중산층이 요동치고 있는데도 청와대와 여당은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 갇혀 있고 야당은 `증세`는 함구한 채 `복지` 변죽만 울리고 있다.
정부의 세제개편안 논란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중산층이 세금을 내는 만큼 자기 처지에 맞는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데 있다. 40대 중산층의 경우 다수가 중고등학생 자녀의 사교육비로 생활고를 겪는`에듀 푸어`이지만 기초 연금은 `그림의 떡`이고, 영유아보육료 지원은 `아! 옛날이여`다.
우리 모두가 경제·복지·문화 등 내치에서의 성공이 곧 `평화통일 기반 구축`이란 생각에 동의하며 진심으로 `통일을 이룩한 대통령`을 원한다. `계급전쟁` 대신에 `사회적 결속`과 `국민대통합`을 바란다. 그러니까 `평화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차원에서라도 `세제개편안`에서부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보자는 거다.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서 벗어난 `공약의 구조조정`도 가능하다고 본다. 정부가 부자증세에 나서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중산층도 자신의 처지에 따라 일정한 세금을 낼 것이다. 우리는 확고한 비전과 철학, 결연한 의지로 국민을 설득해 나가는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을 보고 싶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사회계층 간의 이동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행복한 복지 국가`에서 살 수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을 `불평등의 대가`가 `교육 기회의 격차`로까지 나타나는 `분열된 사회`에서 `더 테러 라이브`를 의식하며 살아가게 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