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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종류

등록일 2013-08-02 00:45 게재일 2013-08-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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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근래에는 살아가기가 참 좋은 세상이 됐다. 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나 딸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며 반 팔 셔츠를 입기도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TV를 보면서 낮잠을 잘 수도 있다. 과학의 힘으로 계절 변화의 느낌을 무력화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때나 수확이 가능하다. 계절은 내 맘대로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주인인양 행세한다. 아무 때나 하고 싶은 일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삶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화내거나 기쁠 때가 있어야 하듯이 4계절이 뚜렷해야 수확이 풍성하고 좋은 한해를 보낼 수 있다.

시간은 형체가 없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시간이지만 우리는 이 시간을 계획하여 당길 수도 있고 연기시킬 수도 있다. 때로는 정보를 빨리 취득하여 일을 남보다 먼저 성취함으로서 경쟁에 이기려 한다. 또는 시간을 잘게 쪼개어 활용을 잘하면, 한정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많은 양의 일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정확히 처리할수록 더 많이 칭찬을 받는다.

시간은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루가 24시간, 1년은 365일 등 헬라어로 흘러가고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chronos)는 시 분 초, 낮과 밤, 계절, 등 일반적인 시간을 말한다. 수평적, 사회적, 양적인 시간이고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이다. 시간 관리를 잘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을 의미한다. 또 이것은 지루할 때는 느리게, 기쁠 때는 빠르게 지나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응급실 환자의 한 시간은 영원과 같을 것이고 파티장의 그 시간은 순식간으로 차이를 느낄 것이다.

또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경험하게 되는 학생이어서 공부하는 시기, 결혼 시즌, 양육할 때, 은퇴 시기 등의 시간을 호라(hora)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이것은 대체로 크로노스에 포함된다. 크로노스와 호라는 측량 가능한 시간이다.

그 외에도 시간의 표현어로는 카이로스(kairos·제우스신의 아들이름)가 있다. 신이 정해 둔 시간을 의미하며 모든 생명의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징계를 받는 때, 축복을 받는 때 등의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크로노스 기간을 짐승처럼 살면, 죽음이라는 카이로스의 마지막에는 비참한 종결을 받는다고 했다. 이 시간은 신과의 수직적이고도 질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크로노스 시간은 인간이 관리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복을 받는 등의 카이로스 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카이로스 시간을 잘 사는 자는 시간의 노예가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 되어서 가치 있고 효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시간을 많이 가지면 알찬 인생이라 한다. 카이로스의 다소가 인생의 질적인 수준을 좌우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놓친채 허겁지겁 크로노스를 발버둥 치듯이 살아가기 때문에 알찬 카이로스 시간을 놓친단다. 간단하다. 때를 거스리면서까지 자기의 세속적인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죽음이라는 기한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에게 시간은 공간과 함께 인간을 속박하는 한계이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자기의 능력에 맞게 적당한 일을 행하여서 선을 이루기를 권한다. 작자 미상의 시 구절이 생각난다.

“오늘은 좋은 날, 햇빛에 눈이 부셔 좋은 날/ 바람 불어 머리 날려 좋은 날/ 비내리니 질퍽거려 좋은 날/ 태어나기 좋은 날/ 살아가기 좋은 날…/ 딱 죽기 좋은 날”

보기에 따라 하루하루는 좋은 날의 연속이다. 이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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