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할 것뿐이다. 불평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들이 밉살스럽게 보인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인해 마음이 먼지를 일으키고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은 거칠어지고 생활은 메말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일에 지치다 보면 그런 경우를 더욱 경험한다. 선교지에서 귀국하자 말자 주일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안동의 대학원 대학교 감사원 감사를 받는 중에도 여수노회 여전도회 여성지도자세미나 강사로, 순서노회 아동부교사 강습회 강사로 금요일까지 그 먼 거리를 오가고 봉사하면서 결국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고 주보 마감시간을 맞춰 목회단상을 쓰다가 결국 코피를 쏟아내야 했으니 천하장사라도 견뎌낼 수 없는 일정이기에 마음이 각박해 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몸도 마음도 시간도 돈도 소진되다시피 해 목사는 마음이 건조해 일주일 내내 기도만하고 남편 얼굴 한 번 마주할 수 없이 보내는 아내에게 이유도 없이 역정을 내게 됐다. 그래도 천사 같은 아내가 “그래. 내가 휴지통이니까 당신 찌꺼기 다 내게 쏟아 넣으세요”라고 웃고 받아넘기지만 그 얼굴 또한 쓸쓸하고 외롭고 지친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지 않기에 그것도 내 스스로를 못 견디게 하는 자괴감에 마음조차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경험한다.
`나는 왜 이렇게 유별나게 사역하는가` 종종 스스로 묻는 질문이지만 명쾌한 답이 없기에 언젠가 우리교회에 방문해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나의 몸이 녹슬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못쓰는 것이 나의 삶의 철학`이라고 하신 방지일 목사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답이 되는 것을 새삼 생각한다. 그러기에 마음이 메말라 생각도 말도 먼지를 일으키는 것같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면서 또 가야할 길을 간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 중의 하나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왜 살아가는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에 대한 정직한 대답도 할 수 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면 진정 우리의 삶의 중심에 가장 아름답게 남겨질 시간의 자국들은 감사함으로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편할 때는, 좋을 때는, 넉넉할 때는 하나님을 잘 믿는 일등 신자의 모습이었지만 작은 어려움을 경험하는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제까지 살아온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었고 세상의 것이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일들이 너무 많았다. 조그마한 어려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등졌고, 작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했었다.
육신적 손해가 조금만 있어도 불 신앙적 행동을 거침없이 했고, 내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영광 같은 것은 아랑곳없이 행동했다. 그 모든 일들은 마음이 건조해 지는 과정이다. 마음이 건조해지면 감사가 없고 마치 마른땅을 거닐 때 먼지가 일어나듯 건조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과 행동은 원망 불평일 수밖에 없다.
감사하는 삶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감사하는 신앙에 이르면 더 없는 지고한 신앙이라고 했다. 감사는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오늘도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우리를 교훈 하신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너무 지치면 마음이 건조해 진다. 그것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그래서 주님도 “한적한 곳에 가서 쉬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 주간을 보내고 맞으면서 쉼의 소중함과 함께 기도와 찬양과 말씀으로 마음이 물댄 동산 같을 때, 삶 또한 넉넉해지는 것을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