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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新성장론

등록일 2013-07-12 00:45 게재일 2013-07-1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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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득 편집부국장

갑(甲)과 을(乙)을 굳이 대변하자면 갑은 `많이 가진 강자`, 을은 `약자 또는 갑의 눈치를 보는 자`로 규정하면 될 것 같다. 포스코에너지의 `라면상무`를 계기로 터진 갑과 을의 주종관계가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파문`사태로 이어지면서 우리사회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주종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을의 항변`이 시작된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외주사·프랜차이즈 본사·대리점 등으로 이어져 온 갑과 을의 위계질서는 그동안 깨기 어려운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저지른 여성 인턴 성추행 사건이나 모 제과업체 대표의 호텔 직원 막말 파문으로 갑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런 수직적인 갑을관계의 벽을 허무는 일들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선두주자가 포스코였다.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이 취임하면서 윤리경영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중소기업과 함께 동반성장을 해야 대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포스코 그룹사에서 그런 불미스런(라면상무)일이 발생해 당사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런 갑을관계를 타파하려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 다. “갑은 가진 것을 조금 더 내놓고 을과 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정부도 여기에 발맞춰 갑을관계를 바꿔보려는 정책적 대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최근 대한상의, 삼성, 포스코,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이 참여한 `산업혁신3.0`운동이 그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 재계가 산업혁신3.0에 나서는 것은 갑을의 구태를 벗고 대기업의 협력과 지원 네트워크를 업계 전체로 확산시켜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조성하자는 게 근본 취지다.

특히 포스코의 상생전략이 눈에 띈다. 포스코는 성과공유제 확산을 2·3차 협력사로 확산하기 위해 동반성장 투자재원을 1천600억원에서 총 2천100억원으로 늘렸다. 여기에는 14개 포스코패밀리사들도 함께 동참한다. 갑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을과 함께 상생하자는 게 기본 방침이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지난달 24일 신(新)윤리경영을 선포하고, 기업 생태계 구성원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복경영`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정 회장은 “이제 기업이 결코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지역사회, 국가 나아가 국제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혼자로는 성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뿌리처럼 얽혀 있는 계열, 패밀리사, 중소기업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성공기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미국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 한국사회에 일고 있는 갑을관계에 대해 “비단 한국만이 겪는 일도 아니고 좀 더 많은 논의가 돼야 하겠지만, 이렇게 공론화하는 사회는 그리 많지 않다. 성숙된 민주주의 사회라는 증거”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갑질`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갑과 을의 주종관계 폐해를 오랫동안 겪어온 한국인의 피해의식이 SNS를 타고 한꺼번에 폭발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갑과 을이 아닌, 파트너로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성숙된 사회분위기가 그렇게 만든게 아닐까.

포스코그룹에서 촉발됐던 갑을관계가 서로 상생하는 전화위복의 사회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포스코가 펼치고 있는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中企와 동반성장)이 갑을관계를 청산하는 신(新)성장의 롤 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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