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창 환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포항 저물 무렵
청봉은 말없이 뿌리까지 젖는다
빗발은 미시령에서 폭설로 차오르고
희뿌연 늦가을 설악이 지워질 듯
어둠이 바다에서 느리게 걸어온다
설악의 자락에 있는 한 포구의 풍경을 그리면서 시인은 청봉 곧 설악의 무덤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포구의 저물녘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저만치 설악의 푸르른 봉우리는 말없이 세상살이의 신산함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봉의 말없음은 무감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감정을 안으로 쌓고 있음을 의미한다. 폭설이 차오르는 광경은 청봉이 지워질 듯한 예감을 주지만 오히려 폭설 안에서 설악은 더욱 완강히 그 자리에 도도하게 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큰 작품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