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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등록일 2013-07-03 00:23 게재일 2013-07-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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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 임상병리학과 교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이다. 다산 선생이 한국 최고의 실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한 개혁 방향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위대한 인물 정약용의 인생을 살펴보면, 오랜 시간 동안 그가 겪어야 했던 귀양살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된 귀양살이는 정약용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이러한 귀양살이가 그를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최고의 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귀양살이라는 정치적 탄압을 더 깊이 학문을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학문 연구에 최선을 다 하였으니 다산 선생은 참으로 비범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전라남도 강진에 가면 `사의재(四宜齋)`란 곳이 있다. 다산 선생이 이 지역에 유배됐을 때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4년 동안 기거했던 주막집이다. 다산 선생은 이곳에 머물면서 많은 저서들을 집필하였고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사의재란 `네 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인데, 그 네 가지 덕목은 바로 (1) 맑은 생각 (2) 엄숙한 용모 (3) 과묵한 말씨 (4) 신중한 행동을 가리킨다. 특히 다산 선생은 그의 여러 저서에서 `과묵한 말씨`의 중요성에 대하여 여러번 강조하였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도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몸가짐, 말씨, 글씨, 판단력 이 네 가지를 인물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니, 말씨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대학과 기업들마다 자기 계발 초청 특강이 열풍이다. 기업이나 대학이 비싼 강사료를 지급하며 초청 특강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직의 혁신을 위해서이며 또 다른 이유는 학생들의 취업률 향상을 위해서다. 필자도 얼마전, 대통령 표창을 여러번 수상하였다는 유명 강사 Y씨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유머를 섞어가며 시작된 Y씨의 특강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강의 내용 대부분이 자기 자랑과 저급한 막말, 그리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 뿐이었다. 어떻게 저런 인격의 소유자에게 대통령 표창이 여러번 수여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다. 유명 강사라고 불리는 강사들의 말씨가 너무 막말이다. 그들이 자극적인 막말을 구사하는 이유가 한편으론 이해된다. 쉴틈없이 웃기고 자극적인 막말을 구사해야만 청중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이곳 저곳 입소문이 나서 또 다른 강연에 강사로 초청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막말의 정도가 심하다. 얼마전 S여대 취업특강에 강사로 초대된 대기업의 인사팀 직원 A씨의 경우도,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과거에 당신보다 예쁜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다”, “전에 취직시켜 준 예쁜 대학생이 있는데 내가 젊고, 장가만 안 갔어도…”, “오늘 수강 태도가 안 좋으면 회사에 가서 S여대생들은 절대 뽑지 말자고 할 것”이라며 막말을 쏟아냈다. S여대 관계자는 문제가 된 사안을 해당 기업에 공식 항의 하였고 다음 학기부터 A씨를 취업 특강 강사에서 배제하였다. 문제가 불거지자 A씨의 상관인 인사팀 상무가 S여대를 방문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옛 속담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들에 가도 샌다`는 말이 있다. 즉, 평소에 철저하게 자신의 말씨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상황과 격식에 어울리지 않는 막말을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뱉을 수 있다. 자신의 사회적 책임과 지위가 낮을 때야 그러한 막말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의 한마디 막말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상처와 피해를 입게 된다. 심할 경우엔 한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라. 아무런 생각없이 내뱉은 한 사람의 말들로 인해 얼마나 혼란을 겪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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