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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건 뭐야?

등록일 2013-05-01 00:02 게재일 2013-05-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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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찬 김천대학교 임상병리학과 교수

한주간의 바쁜 일정이 마무리 되는 어느 금요일 늦은 오후, 변함없이 서울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부산행 KTX 열차 8호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정시에 맞추어 열차는 출발~, 열차가 부산을 향한 지 대략 5분 정도 지났을까? 승객들은 저마다 열차 좌석 깊숙이 기대어 피곤한 몸을 의지하고 눈을 붙이려 할 즈음, 가족 동반석에 앉은 5~6살쯤 되 보이는 사내아이가 객실 창밖을 가리키며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소리로 “아빠! 저건 뭐야?”라고 외쳤다. 갑작스런 아이의 큰 소리에 깜짝 놀란 8호차 승객들은 하나둘씩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품에 꼬옥 끌어안고 미소를 지으며 “아, 저거? 저건 구름이야”라고 자상하게 아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 주고 있었다. 아이는 “우와~ 저게 구름이야?”라며 감탄하고 흥분했다.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아이는 조금전 보다 더욱 크고 요란한 소리로 “아빠! 그럼 저건 뭐야?”라 했다. 아빠는 변함없이 “아, 저거? 저건 트럭이야”라고 답했고, 아이는 “우와~ 저게 트럭이야?”라며,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하늘의 비행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빠, 그럼 저건 뭐야?”라고 외쳤다.

편안한 기차여행을 기대했던 8호차 안의 승객들은 그 무례하고 소란한 부자지간(父子之間) 때문에 하나둘씩 얼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의 작은 진동 소리도 귀에 거슬리는 열차 객실에서 정말 참고 견디기 어려운, 이른바 `멘붕`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잠시 이러다가 몇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조용해지겠지라고 생각했던 승객들의 순진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 아이는 더욱 들뜬 목소리로 “아빠! 저건 뭐야?”를 남발했다. 짜증난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참다못한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정장차림의 어르신 한 분이 그 아이의 아빠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선생님, 당신 아드님 때문에 여기 객실의 모든 승객들이 불편해 하는 것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다소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시했다. KTX 8호차의 공기는 급격히 냉랭해졌고, 모든 승객들의 시선은 아이 아빠에게로 집중되었다.

시끄러운 아이의 아빠는 중년신사가 전한 말을 듣고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밝게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자신의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갑자기 앞뒤 좌우 승객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여전히 웃는 얼굴로 “여러분, 저희 아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서 여러분의 기차 여행에 불편을 끼쳐 드려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사실 여기에 있는 제 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제 아들이 어느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안구를 기증 받아 개안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 수술 이후 처음 눈을 뜨게 되어, 그동안 귀로만 들어왔던 비행기, 트럭, 구름을 자신의 눈으로 처음 보게 되니 그 기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었나 봅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죄송하지만, 저희 아들에게 10분의 시간만 더 주신다면 앞으로 10분간 마음껏 기뻐하게 두고 그 이후에는 제가 제 아들을 잘 타일러서 조용히 시키도록 하겠습니다”라며 큰소리로 객실 승객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아이 아빠의 사연을 들은 모든 승객들은 너도나도 큰 박수로 이들 부자를 축하해 주었다. 그로부터 10분간, “아빠! 저건 뭐야?”는 조금전과 다름없이 시끄럽게 계속 되었지만, 모두들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소리치는 그 아이를 바라볼 뿐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정의 달 5월, 부산행 KTX 8호차의 훈훈한 에피소드로 모두의 마음이 따스해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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