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달력의 1월을 펼칠 때만 해도 왠지 새해 기분이 들지 않았으나 음력 설날을 맞으니 이제야 새로운 결심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서양은 태양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기간을 나누었으나 동양에서는 1년이라는 단위를 달의 순환에 맞추어서 정했다. 서아시아 지방의 이스라엘도 오순절 등의 절기를 음력에 맞추었다. 그래서 그 날이 달력에서는 매년 다른 날에 정해진다. 독재 정권 시절을 거치면서 음력설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제거 대상이었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이 절기는 지금도 꿋꿋이 우리 문화에 존재하고 있다.
새해는 뱀의 해이다. 뱀은 혀를 날름거리면서 소리 없이 접근하며, 독이 있기 때문에 징그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구렁이는 집을 지키는 존재로, 또 뱀은 매년 허물을 벗기 때문에 변화와 재생을 의미해 왔다. 또 뱀은 다산이나 재물의 풍부함을 대표하는 동물로 여겼다. 성경에서는 `뱀처럼 지혜로워라`라고 했다.
서양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스클레피우스는 `치유의 신`이고, 그의 지팡이에는 뱀 두 마리가 서로 감고 기어오르는 형상이 있는 데, 이것은 현재 의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까 삶이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와 같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된다. 바다 저 건너편에 도달해야 하는데,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피곤해도 멈출 수가 없다. 앞으로 항해에서 실패하거나 괴로울 때에는 신이든 뭣이든, 보이지 않는 것에라도 매달려야겠다.
그러나 경험상으로 볼 때 그렇게 노력해도 일은 잘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유리한 조건들은 한 밤중에 깊이 잠들었을 때, 소리 없이 나를 비껴 지나간다. 정신 차리고 눈을 부비면서 행운을 기다리지만, 하필 졸음이 퍼부을 때에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금년 한 해도 다른 해와 똑 같을 것이다. 좋은 일은 적게 나타나고, 좋지 않는 뉴스가 넘쳐날 것이다. 온갖 인간의 갈등과 국제 분쟁이 신문을 꽉 메울 것이다. 극복할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성실하게 항해하면서도 인생의 한 복판에서 재산을 날린다든지,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이유도 모르게 고난과 풍랑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억울하게 당하기도 하고, 여러 요소들이 합쳐진 설명할 수 없는 역경을 수없이 많이 맞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고난이나 불행을 잘 이겨낸 자가 10명 중 8~9명이라면, 이상하게도 성공과 번영을 잘 이겨낸 사람은 10명 중 1~2명뿐이라고 한다. 그만큼 성공과 번영은 이겨내기가 고난보다도 어렵다. 자기만족과 기뻐서 교만한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인기 있을 때, 건강할 때, 부유할 때, 우리는 오히려 자숙하면서 홀로 조용히 스스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척추 병, 폐질환, 직장암을 앓았던 `빙점`의 저자, 미우라 아야코는 삶에서 병들고 불행해 져야 겨우 알 수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병들어야 드릴 수 있는 기도가 따로 있고 /병들어야 들을 수 있는 말씀이 따로 있고, /병들어야 감사할 수 있는 감사가 따로 있고,/병들어 보아야 겨우 인간이 될, 싹이 노란 인생도 있다.`
질퍽한 인생길을 질병과 장애를 겪으면서 살아온 사람의 비장함과 극복의 아픔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했다. 그녀는 정상인보다 더 긍정의 노래를 부르면서 삶의 항해를 했었다.
금년에 당신은 어디로 누구와 함께 항해를 떠나려는가? 만일 항해를 중단한다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려는가? 순풍, 역풍, 맞바람, 폭풍, 해일 등의 여러 가지 난관에 대비하는 자세를 가졌는가? 2013년은 소리 없이 시작됐다. 부디 항해를 하는 중에 정지하지는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