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새로운 지배자로 떠오르던 몽골의 칭기즈칸(1162~1227)이 금나라(1115~1234)의 인재로 명성이 자자한 야율초재(1190~1244)에게 물었다. “나의 신하가 돼 줄 수 있겠는가?”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신다면 폐하의 충복이 될 것을 하늘과 땅에 맹세합니다” “어떤 조건인가?” “백성이 피눈물을 흘릴 때 함께 눈물을 흘려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겠다”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같이 굶어 줄수 있습니까?”“이 또한 짐의 목숨을 걸고 반드시 지키겠다” 두 가지 약속에 대해 확답을 받은 야율초재는 칭기즈칸과 함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을 세워 인류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이름을 떨쳤다. 야율초재와 칭기즈칸의 약속은 짧고 단순하지만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백성이 통치의 근본 목적이요, 제왕도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새로 출범한 인수위 행보를 보면 예전 인수위와 차별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여 잘한다고 박수쳐주고 싶은 마음이 됐다가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대목도 적지않다. 먼저 인수위원에 측근 실세들을 배제하고 학자 위주의 실무형으로 구성한 것이나 말 많고 탈 많았던 자문위원 구성을 하지 않은 데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환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때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또 출범식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가 가져야 할 최고의 가치는 국민의 삶”이라고 했다니 칭기즈칸과 야율초재의 약속을 생각케 하는 다짐이다. 출발이 좋다.
그러나 인수위 인사가 지나치게 철통보안을 강조하면서 제대로 인사검증은 되고 있는지, 일부 측근의 의견이 편중되게 반영되거나 박 당선인 혼자만의 판단으로 나랏일 맡길 사람이 결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야당이 벌써부터 `불통인사` `밀봉인사`라고 날선 비판을 내놓는 게 흘려들을 얘기도 아니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천명해 온 만큼 인수위와 국민 사이의 소통은 매우 중요한데, 극우성향의 발언으로 야당의 비판을 받았던 윤창중 대변인의 행보는 아슬아슬하다. 윤 대변인은 인수위 워크숍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기삿거리는 없다. (기조발제도) 공개할만한 영양가는 없었다”고 말했고, “영양가가 있고 없고는 언론이 판단할 문제 아닌가”라고 이의를 제기하자 “있는지 없는지는 대변인이 판단한다”고 했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국민의 알권리를 막는 것은 너무 오만한 태도다. 야당과 불필요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그렇다. 이명박 인수위때 부위원장을 역임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인수위 출범직후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차분히 만들어 대통령 취임 뒤 장관이 임명되는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야당과 협조를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한 보람이 없어진 셈이다.
그나마 인수위가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 보다는 박 당선인 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를 구체화 할 로드맵을 짜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소식은 반갑다.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에 이어 제위에 오른 오고다이칸이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하려 한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의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개혁이라면 새로운 사업이나 제도를 시행해 백성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 보다는 원래 있던 가운데서 해로운 일, 필요없는 일을 제거하는 더 낫다는 얘기다. 이른바 무위의 개혁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이미 대선기간 동안 국민에게 수많은 공약을 내놨다. 인수위는 이들 공약을 차기 정부의 정책으로 구체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무위의 개혁만으로도 인수위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