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부터 사람들의 성취목표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서양 사람들은 주로 출세를 하거나 재물을 모으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과거 동양에서는 개인의 영달보다는 인격완성에 목표를 두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다. 불교나 유교, 또는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밝히는 수행 문화가 사회를 이끌어 왔다 . 어느 사상이든 그 근본에는 자기의 수양에서 시작했다. 우리 속에는 거짓된 자아가 있단다. 그것은 게으르고, 어리석고, 교만하고, 비겁하고, 탐욕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는 원래의 내(我)가 있는데, 동양사상은 주로 이런 마음을 이겨 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공자는`자기를 강하게 훈련하는 데는 쉬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약간 은근하고, 갸륵하며, 스스로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약간 고되고도, 조금은 슬픈 빛의 사랑을 뜻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모자람을 이해하고, 다독이며, 자신을 긍정하고, 자기 잘못을 용서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운명적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서 자기 성취를 위해 수행하기를 권했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는 제일 기본 방법은 먼저`자기를 사랑(愛己)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한 후, 비로소 자신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상대에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 뭔지를 알게 된다. 자기사랑은 하기가 매우 어렵다. 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남녀 간의 사랑과 같이 단순히 즐거운 감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착오이다.
자기 사랑에는 살면서 만들어진 편견이나 견해 등을 수행(修行)을 통하여 극복해 넘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덕경에는 `자기를 아끼면서도 스스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自愛不自貴)`고 했다.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 마치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어느 순간 흘러내리면서 다른 물방울도 흐름을 시작케 하는 것과 같이, 자기 스스로에서 타오르는 열정과 사랑은 또 다른 사랑과 열정을 낳는 좋은 불씨가 되도록 한다.
자기 사랑 그 다음 단계로는 자기의 뜻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기수양(修己)에 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도 험난한 과정이 될 수 있다. 학문에 접근할 때에도 학문자체를 닦는 것보다는, 먼저 수양으로 몸을 닦는 것을 더 크게 생각한 것과 같다. 수행에는 오로지 자기를 그곳에 던져 버리는 방법(盡己)을 택한다. 이것은 충성된 마음(忠),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마음이라고 했다. 속에서 우러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려 알게 하는 단계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과 같다.`나(我)라는 에고`조차 없이 자식의 마음속에 쏙 들어갔다가 나오는, 자기를 다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노력의 마지막은 자기를 떠나는 것이다.`자기의 없음(無化)`이다.
공자는 이 과정을 통과해야 제 몸 닦기, 집안 단속, 나라경영, 천하의 태평성대를 이룩한다고 했다. 그리고 노자는 자신을 다(盡)한 상태에서는 `밤이면 별을 보고 놀다 자고, 낮이면 밭에서 일을 하며 산천과 더불어 산다`고 했다(無爲自然).
이러한 세상의 모든 면을 이겨 나가면 그는 자기를 극복한 경지(克己)에 도달한다. 세상의 여러 일에서 느끼는 객기(客氣)를 물리치는 방법은 극기 외에는 없다. 노여움과 두려움은 다스리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도 수양을 많이 해 스스로를 이길 수 있으면 자기가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디어 자기완성을 이뤄냈을 때(成己), 그는 조용하고 잔잔한 사랑, 인(仁)을 이룬 것이다. 이것은 만물을 이룩케 하는 지식이 된다. 인(仁)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과 자기의 완성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인격과 도덕을 완성시켜 나가고, 자기 수행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