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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

등록일 2012-10-25 20:58 게재일 2012-10-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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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만 수
그의 빈 곳은 화려하다

가끔씩 잔잔히 흔들리기도 하면서

가득 비어 있다

욕망의 바다 끝에서 바람이 오면

깃을 여미고 불을 꺼온 시간들 선명하다

그는 환한 네거리에

마지막 벌레처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여기저기 말발굽과 바퀴들이 지나도

꿈쩍하지 않고 서 있다

그의 빈 곳은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빈 곳에는 빈 것들이 흘러들어

서로를 비우기 시작하며

충만한 빈 곳으로 남을 것이므로

우리의 한 생이란 지나간 서사의 기록이 아닐까. 욕망과 열정으로 뜨겁게 일렁거렸던 청춘의 시간들과 성숙과 안정으로 걸어온 생의 중반기와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녘처럼 쓸쓸함이 맴도는 생의 후반부. 이 모두가 돌아보면 촘촘히 기록되어진 서사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빈 곳으로 남겨졌을지라도 아직은 욕망의 바다에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던 물결소리가 배어있어 충만한 빈 곳으로 남아있는 것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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