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재 순
신전이다
거기에 새나 벌레만 깃든다고
말하지 마라
바람도 사람도
문 살짝 열고 들어가
숨다운 숨을 쉬고 나온다
지나친 바람도 큰물도
넘쳐나는 햇빛도 재우는
넉넉한 오지랖
세상의 격랑들 찾아와
남기고 간
저 경전을 읽어 보라
나무는 신전이고 또한 경전이다. 마북리 700년이나 된 노거수를 본 적이 있다. 인간 수명의 수 십 배를 살고 있는 나무 앞에서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격랑의 역사를 묵묵히 지켜 봐온 그 나무는 신전이고 경전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장 순리를 존중하면서 싹 틔우고 잎 피우고 성장을 차려입었다가 가을에 열매를 내미는 정직하고 착한 존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네 인간들은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 볼 일이다. 말없는 나무의 말에 귀 기울일 일이다.
<시인>